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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9일 (토) 20:08 판
한국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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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2~3세기부터 한반도 서부에서 존속하였던 소국 연합체를 마한이라고 부른다. 삼한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마한의 역사
대체로 기원전 2~3세기에서 서기 3세기에 이르기까지,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 분포한 54개의 소국(小國)집단을 가리킨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따르면, 마한 54소국은 큰 나라는 1만여 가(家), 작은 나라는 수천 가로서 모두 합하면 10여 만 호(戶)가 된다고 한다.
기원전 3세기경 토착집단의 점진적인 발전의 결과 삼한이 대두했다고 본다. 이는 기원전 2~3세기 중남부 지역에 좁은놋단검문화를 배경으로 한 다수의 정치집단이 존재했는데, 이들이 마한을 이루는 기본세력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기원전 1세기 이후 고조선의 유민과 문화의 유입, 철기의 보급, 부여계 유이민 집단(백제)의 정착 등의 정치 문화적 변화 속에서 철기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세력권이 형성됨에 따라 청동기 문화 단계의 마한의 영향력은 점차 위축되었다. 그리하여 2세기 이후부터 백제가 마한을 완전히 통합할 때까지 마한 지역은 백제 중심의 소국연맹체와 목지국(目支國) 중심의 토착세력권이 병존하는 상태였으며, 이후 백제가 점차 강성하여 마한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5세기 경에는 백제에 완전히 편입되었다고 보고 있다.
특히 247년 마한의 영주였던 목지국이 다른 연맹국(백제도 포함)과 함께 연합군을 창설하여 대방군과 낙랑군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함으로써 목지국의 지도력에 큰 상처를 입고, 백제가 마한 연맹체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이와 별개로 마한의 남부 지역이 일본의 옛 이름으로 알려진 '왜(倭)'였다는 설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한반도의 왜에 대해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마한 소국들[1]
감해국(感奚國) ·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 ·건마국(乾馬國) ·고랍국(古臘國) ·고리국(古離國) ·고비리국(古卑離國) ·고원국(古爰國) ·고탄자국(古誕者國) ·고포국(古蒲國) ·구로국(狗盧國) ·구사오단국(臼斯烏旦國) ·구소국(狗素國) ·구해국(狗奚國) ·내비리국(內卑離國) ·노람국(怒藍國) ·대석삭국(大石索國) ·막로국(莫盧國) ·만로국(萬盧國)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 ·모수국(牟水國) ·목지국(目支國) ·백제국(伯濟國) ·벽비리국(辟卑離國) ·불미국(不彌國) ·불사분사국(不斯濆邪國) ·불운국(不雲國) ·비리국(卑離國) ·비미국(卑彌國) ·사로국(駟盧國) ·상외국(桑外國) ·소석삭국(小石索國) ·소위건국(素謂乾國) ·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 ·신분활국(臣濆活國) ·신소도국(臣蘇塗國) ·신운신국(臣雲新國) ·신흔국(臣國) ·아림국(兒林國)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 ·염로국(冉路國) ·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 ·원양국(爰襄國) ·원지국(爰池國) ·일난국(一難國) ·일리국(一離國) ·일화국(日華國) ·임소반국(臨素半國) ·자리모로국(咨離牟盧國) ·지반국(支半國) ·지침국(支侵國) ·첩로국(捷盧國) ·초리국(楚離國) ·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 ·치리국국(致利鞠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