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한국의 역사
  • 한반도 중북부를 차지하고 있는 공화국. 변형된 사회주의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목차

역사

성립

한반도는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지하조직으로 사회주의 세력이 민중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으며, 만주와 중국 일대에서도 사회주의 계열의 무장운동만이 남았다. 1945년 8월에는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한반도 북부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소련은 사회주의 무장세력과 운동세력을 바탕으로 손쉽게 38도선 이북지역을 안정적으로 점령하였다. 소련은 이들에게 사실상의 정부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발족시켰다.(1946년 2월) 이후 북한은 소련의 지원을 받는 김일성 계열과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조선노동당 계열, 그리고 중국에서 무장투쟁을 한 연안파가 정국을 장악하게 이르렀다. 1946년 11월에는 총선거를 실시하여 3458명의 대의원을 선출하였으며, 이들을 바탕으로 지방을 장악해 나갔다. 1948년 2월 8일에는 조선인민군이 결성되었으며, 같은 시기에 헌법도 거의 윤곽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1948년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초기 역사와 한국전쟁

남북 분단 이후 김구 선생의 방북 등으로 인해서 몇 차례 민족공동체 결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실효 없이 무산되고, 분단은 점점 고착되었다. 이때 북한의 3대 세력인 김일성과 조선노동당, 연안파의 불안한 동거가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김일성은 간첩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정적을 제거하였으며, 이때 박헌영 일파도 제거되었다.

한국전쟁은 소련의 지원 아래 1950년 6월에 일어났다. 일시적으로 인민군이 낙동강 인근까지 진출하는 성과도 있었으나 곧이어 미국과 UN군의 반격에 밀려 압록강 인근까지 내주어야 했다. 이후 중국군의 개입으로 간신히 전세를 극복하였다. 이후 1953년 7월에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전쟁으로 평양에는 건물 2채만 남고 모두 파괴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며, 수 백만명이 미국의 폭격으로 죽었다. 이는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를 이용하여 김일성은 손쉽게 권력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김일성 체제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김일성은 '천리마 운동'을 단행하여 대대적인 복구와 산업화를 시작하였다. 이는 큰 성과를 거두어 많은 사회주의 국가의 본보기가 되었다. 또한 경제발전을 명목으로 연안파와 소련파를 제거하였다. 1972년에 김일성의 숙청이 마무리 되었고, 독재체제를 정비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이 제정되었다.

이후 김일성의 신격화와 절대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주체사상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1980년대에 주체사상은 사회주의를 대체하는 북조선의 주요이념이 되었다. 이 시기 완성된 주체사상은 주석의 지위와 역할을 절대화, 구체화한 혁명적 주석관과 사회정치적 생명체 이론을 추가시켜 주체사상은 수령의 올바른 영도를 받아야 하고 사람이 자주성·창조성·의식성을 가지고 자기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는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로써 혁명의 주체는 ‘수령·당·대중의 통일체’로 사회 전체가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생사운명을 같이 한다고 하여 북한사회를 배타적인 이념적 혈연집단으로 결속시켰다.

1990년대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면서 북한은 경제적으로 차차 곤란을 겪기 시작했으며, 외부로부터 고립되어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원자력 발전,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였다. 이는 북핵위기를 불러왔고, 미국과 북한은 전쟁 초읽기에 돌입하였으나 제네바 합의로 전쟁의 고비를 넘겼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은 사망하였다.

김정일 체제

김정일은 1980년 제6차 당대회로 2인자의 지위를 굳혔다. 1994년 아버지 김일성이 사망하자 권력을 승계받았으나, 주석을 포함한 직위를 공석으로 남겨두고 헌법개정을 통해 '국방위원장'이라는 직위를 근거로 북한의 전권을 행사하였다. 1990년대 중반 외부의 고립과 연이은 대홍수로 북한은 큰 식량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이를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른다. 이 위기는 핵무기 개발 포기를 담보로 한 미국 및 중국, 남한의 지원으로 간신히 벗어났으나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미국은 테러지원국으로 하여 북한을 더욱 옥죄었으며, 외부로의 소통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1999년~2000년 클린턴 정부 시절 미국과의 화해분위기와 6.15 공동선언을 바탕으로 시장주의적 개혁을 꾀했으나,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출현으로 이는 무산되었고, 북-미간의 적대적 긴장관계는 다시 높아져갔다.

2006년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완료하고 대외에 천명하였다. 이로 인해서 미국 및 중국은 핵포기를 위한 대규모 지원을 약속하는 9.19 성명과 2.13 합의를 유도하였다. 현재 김정일의 건강악화로 김정일 체제가 흔들리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미국과의 대립

남북관계

각종 지표(2006년)

  • 인구: 약 2300만
  • 영역: 122,762 km²
  • 국민총생산: 약 295억 달러
  • 1인당 국민소득: 약 1400 달러
  • 평균수명: 71.6 세
  • 수출: 약 13억 달러(2004년)
  • 수입: 약 28억 달러(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