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무열왕
신라 역대 왕계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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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왕의 손자이며, 김용춘의 아들이다. 부인은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이다. 이는 김유신을 중심으로 하는 가야계 진골귀족들과 연합한 것으로 사료된다. 642년, 백제의 대공세에 밀려 대야성이 함락되고 자신의 사위인 김품석과 딸이 죽자 그는 신라 단독으로는 백제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외교전략에 나서게 된다. 이때 김유신과 평생의 동지로 가겠다는 맹약을 하면서 두 세력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진다. 고구려를 찾아간 김춘추는 백제 공격을 요청하지만 실패하고, 도리어 죽음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간신히 탈출한 그는 일본과의 교섭도 실패하고, 당나라로 떠나게 된다. 그리하여 648년 당나라와의 동맹을 이끌어낸다.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신흥귀족세력으로 선덕여왕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러나 647년 구귀족세력인 비담·염종의 난이 일어나자, 그는 김유신을 시켜 이 반란을 진압하도록 하고, 대대적인 구귀족세력 숙청을 단행하여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647년에 선덕여왕이 죽자 구귀족세력과 타협을 통해 진덕여왕을 즉위시키고, 구귀족세력의 대표인 알천을 상대등에 임명한다. 654년 진덕여왕이 죽자, 그는 알천과 구귀족세력과의 충돌이 빚어지게 된다. 이때 김유신은 무력을 동원하여 그를 즉위시켰다. 이가 바로 태종 무열왕이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내정개혁을 단행하여 651년에는 집사부를 만들어 왕권의 기반조직이 되게 하였다. 왕위에 오른 이후 자신의 친족을 요직에 세우고, 김유신을 지원하는 등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또한 당나라의 정책을 받드는 "한화정책"을 통해서 왕권의 안정화를 꾀했다. 그리고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 멸망시키도록 하였다. 그의 외교전략이 성공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외교전략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661년에 죽었다. 시호는 무열왕, 묘호는 태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