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왕의 아들이며, 효성왕의 동생이다. 즉위한 이후 왕권강화에 힘썼으며, 그 방법으로 중국화 정책을 썼다. 757년, 9주 5소경 117군 293현의 고유지명을 모두 중국식으로 바꿨으며, 758년에는 관직명도 중국식으로 바꿨다.
왕과 가까운 집사부의 기능을 강화하고, 집사부의 장관을 '중시'에서 '시중'으로 승격시켜 권한을 강화했다. 또한 왕권을 뒷받침할 사상적 기반으로 유학교육에도 힘썼다. 748년에는 정찰(貞察)이라는 관리를 두어 관료들의 부정을 감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