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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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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귀족회의. [[백제]] [[정사암 회의]], [[고구려]] [[제가회의]]와 유사한 측면이 강하다.

[[신라]]는 [[진한 사로국]] 이래 더딘 성장을 통해서 주변 부족세력을 힘으로 정복한 후 [[신라]]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하였다. 이에 [[신라]] 안에서 주변 부족장 출신의 귀족들이 생기고, 이들이 모여 화백회의를 구성하였다. 이 화백회의에서 주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 [[531년]] 화백회의의 의장인 [[상대등]]이 생기기 이전까지는 왕이나 [[갈문왕]]이 화백회의를 주재하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화백회의는 귀족들을 화합시켜 중앙집권체제를 만드는 데 일부 기여하였으나, 이후 왕권과 대립하게 된다. 그래서 [[647년]]에는 [[비담·염종의 난]]이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 반란이 [[김유신]]에게 진압당하고, 대규모 귀족숙청이 이뤄진 이후 화백회의의 기능은 급속도로 약해진다.

[[신라]] 하대에 왕권이 약해지면서 귀족들의 다툼과 연합에 의해 왕이 세워지고 폐위되자, 귀족회의인 화백회의의 중요성은 다시 커졌다. 9세기 이후 화백회의는 [[신라]]의 정치적 흐름을 결정하는 중요한 위치에 이르게 된다.

[[분류:신라]]
[[분류: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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