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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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 계승 이전

이성계의 5번째 아들이다. 1383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392년 4월, 이성계가 낙마하자 고려를 지키려는 정몽주와 온건 신진 사대부 세력들이 반격을 하려고 하자,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이고 대세를 굳혔다. 그리하여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조선 건국에 큰 공헌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왕위 계승에서 탈락하고 정도전 등이 사병혁파를 비롯하여 그를 압박해오자,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그는 둘째 형을 왕위에 세웠다. (정종) 이후 이방간이 일으킨 제2차 왕자의 난도 진압하고 세제에 책봉되어 정종의 양위를 받아 1400년 11월에 왕위에 올랐다.

치세

1401년에 모든 업무를 의정부와 6조로 일원화 하였으며, 이 당시 관제개혁으로 조선 조정은 고려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또한 왕권을 강화사키기 위하여 6조 직계제를 실시하였으며, 지방제도를 정비하여 특수촌락(, 부곡, 등)과 군현 통폐합을 가속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령체제의 일원화, 8도의 기틀을 다졌다. 또한 왕권의 위협이 되는 사병을 혁파하고, 병조가 관할하게 하였다. 잡색군을 편성했으며, 거북선을 만들어서 시험했다는 기록이 있다.

토지를 늘려 120만 결의 토지를 추가로 확보했으며, 세금도 1/10을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호패법인보법을 제정했다.

그는 1418년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나, 군사 및 중요한 일은 직접 처리하였다. 박위쓰시마 섬 정벌도 이 시기 이뤄졌다. 1422년 사망하였다.

왕권의 강화를 위하여 많은 개국공신, 외척들을 죽이거나 귀양보냈으며,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신하는 가차없이 처벌하였다. 그의 왕권강화 작업은 많은 피로 물들여졌지만, 훗날 세종의 치세에 큰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