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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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의 경제·사회 이데올로기. 1990년대 이후 전 세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 성장하였다.

신자유주의 이념은 1930년케인즈 이론에 대한 반발로 자본에 대한 자유, 노동 유연화, 민영화, 규제철폐, 국가개입 최소화, 무한경쟁, 금융중심의 시장체제 등을 주장하는 학파로서 시카고 학파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1970년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1980년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이념적 기반을 제시하였다. 또한 1980년마가릿 대처 영국 총리는 신자유주의를 근거로 영국에 고강도 개혁을 실시하였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지나친 개입과 통화규제로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제약당하며, 공정한 경쟁에서 승리한 이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회적 문제에 있어서도 시장의 논리와 효율성과 합리성의 논리에 근거하여 지나친 복지제도의 청산, 기업에 대한 사회적 규제 철폐, 공기업의 민영화를 주장하고 나선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최종적인 주장은 모든 것은 시장이 스스로 결정하며, 이것은 매우 합리적인 방향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국가는 시장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시장이 결정한 것은 국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한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 이념이 최초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후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개방화'의 구호에 맞춰 신자유주의는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한시적인 것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발생하고, 이에 세계 금융투기자본이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에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념인 신자유주의를 국내에 설파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에서 손쉽게 투자하고 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이런 상황을 한국의 대기업들도 적절히 인식하여 과거 이들은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으로 강력한 경제력을 건설하였으나, 이제는 국가의 시장개입 완화를 요구하였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의 많은 기능이 시장으로 이월되었고, 이는 노동 유연화, 비정규직, 빈부격차, 금융자본의 축적, 외국투자와 해외투자의 활성화 등으로 이어졌다. 또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필연적으로 개방화 정책을 요구하여 한미 FTA와 무역확대를 낳았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점 자본의 등장으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경쟁은 불가능해졌고, 국가의 개입 축소로 빈부격차를 막을 방법이 사라져갔다. 또한 노동유연화로 인한 비정규직 확대는 사회불안을 야기할 가능성이 나타났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경제 부분이 아니라 모든 사회영역과 교육영역, 문화영역까지도 신자유주의이념을 이식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어 많은 마찰이 불가피하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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