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발해국
거란은 발해의 상경용천부를 급습하여 대인선을 포로로 삼고 발해를 멸망시켰다. 그 과정에서 거란은 다른 발해의 세력은 토벌하지 않고 발해의 수도만 급습한 것이다. 이에 발해의 기존 병력과 유민 세력은 바로 부흥운동을 일으킬 수 있었다. 후발해국의 중심 세력은 대씨 일족이었고, 대외적으로 발해를 계승한 것으로 공표했으리라 짐작한다.
후발해국의 성립과 발해 부흥운동은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당황하고 했고, 거란은 옛 발해 영토에 세웠던 임시적 국가인 '동단국'을 요동지역으로 옮겼다. 이는 발해 부흥 세력에게 밀려난 것으로 짐작된다.
후발해국은 압록강과 동만주, 연해주 일대를 중심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백두산 화산 폭발설' 혹은 기타의 이유로 국력이 급격히 약화되었고, 구 발해 귀족이었던 오씨 일족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발해 태자였던 대광현이 고려로 망명하는 934년이 아닐까 추정한다.) 후발해국이 정확히 언제 멸망했는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후발해국은 대개 정안국으로 이어진다고 현재 역사학계에서는 추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