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

역사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중국의 역사

초기에는 전형적인 부족연맹체제로 시작하였다. 8부족이 있다고 전해진다. 고구려와의 충돌이 있었지만 광개토 대왕의 공격 이후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이후 돌궐에 복속되었다. 628년 돌궐에서 자립하여 당나라에 복속하였으며, 696년 당나라로부터 독립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이진충의 난), 실패하였다. 이후 당나라가 힘이 약해지자 자립하여 907년에는 야율아보기가 칸의 자리에 오른다. 야율아보기는 종래의 느슨한 부족연맹체제를 붕괴시키고 전제왕권을 구축하였다. 야율아보기916년 천황제로 즉위하고, 926년 발해를 멸망시켜 북방의 패자로 군림하였다.

936년 석경당의 요청에 따라 후진(後晉)을 건국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이 대가로 연운 16주를 얻게 되었다. 거란은 한족을 지배하기 위하여 나라 이름을 '대요(요나라)'라고 중국식 이름으로 바꿨다. 이후 947년에는 중국 내륙 깊숙히 쳐들어가 개봉을 점령하였지만, 한족 통치의 어려움을 느끼고 후퇴하였다. 요나라는 남쪽 중국영토를 지배하기 위해서 '남면관'을 설치하고 당나라의 군현제를 모방하였으며, 북쪽영토는 '북면관'이라 하여 자신들의 고유통치방식을 사용하였다. 이와 같은 이원적 통치방법은 훗날 많은 유목민 정복왕조에게 활용되었다.

요나라는 요 성종 시기에 국력이 최전성기에 달했으며, 송나라에 유리한 조건으로 화친을 맺었다. 이를 전연지맹(澶淵之盟)이라고 한다. 요 성종은 또한 고려를 3차례 침입하였으나 실패하였다.(거란 침공) 이후 황위를 둘러싼 갈등으로 나라가 어수선 해졌으며, 만주지역의 여진족에게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후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송나라의 협공에 의해 나라가 흔들렸으며, 최종적으로 1125년요나라금나라의 공격에 멸망하였다.

야율대석(耶律大石)은 남은 세력을 이끌고 서쪽으로 이동해 1132년에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서요(西遼)를 건국하였다. 흑거란(黑契丹), 카라키타이(Karakitai)라고도 불리는 서요(西遼)는 3대에 걸쳐 존속했지만, 1211년 칭기즈칸에 밀려난 나이만(Naiman) 부족의 쿠츨루크(Kuchlug)에게 점령되었다가, 1218년 몽고에 복속되어 멸망하였다. 1219년 남아 있던 마지막 세력은 만주지역에서 고려몽고의 연합공격에 의해서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