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암은 사비성 부근의 호암사(虎巖寺)에 있었다고 전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에서는 좌평을 뽑을 때 후보 3, 4명의 이름을 이 정사암 위에 봉함해두었다가 뒤에 이를 열어 이름에 도장이 있는 자를 좌평으로 삼았다고 한다. 정사암 회의는 백제 후기의 귀족연합적인 정치운영형태를 보여준다. 이는 왕권의 약화와 연결된다. 유사한 것으로는 고구려의 제가회의와 신라의 화백회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