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거란의 급습으로 멸망당한 이후, 발해 유민들은 사방에서 발해 부흥 운동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발해 멸망 직후에는 '후발해국'을 건국했으리라 학자들은 추정한다. 그러나 후발해국은 이런저런 이유로 급속히 힘이 약화되었고, 옛 발해 귀족이던 열씨 일족이 발해의 왕권을 차지하여 압록강 일대에 정안국을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송나라는 정안국의 거란의 배후에 있다는 것을 착안하여 정안국과 함께 거란을 협공할 계획이었다. 979년경에는 오씨 정권이 들어서 정안국을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거란은 정안국의 존재에 위협을 느끼고 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정안국을 공략하여 986년에는 정안국의 영토에 4개의 주를 설치하였다. 사실상 이 무렵 정안국은 멸망하였으나, 역사서에는 정안국이라는 이름이 이후에도 등장한다. 아마도 발해 부흥 세력이 정안국의 이름을 빌리거나 혹은 역사 편찬 과정에서 발해 부흥 세력을 통칭하여 정안국으로 옮겼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정안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압록강 인근에는 옛 발해 유민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고려 중기에는 이들 가운데 고려에서 천한 일을 하거나 몸을 파는 여인이 생겨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