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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29일 (일) 11:23 기준 최신판

  •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 실시된 관리 선발 시험제도.

개론

중국수나라 시대인 587년 처음 과거제가 실시되었다. 과거제 실시배경에는 유교적 소양을 갖춘 사람을 관리로 등용하여, 유교이념을 국가이념으로 강화시키고, 이를 계기로 왕권강화와 중앙집권적 국가체제 완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대개 유교경전의 습득 여부를 합격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대개 과거제의 자격조건은 양민 이상이지만, 고급학문을 공부할 수 있었던 지배계급이 주로 과거에 응시하였다.

과거제는 다양한 형태와 등급별로 나눠져 있으며, 국가별·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고려시대의 과거제

원래 통일신라시기부터 독서삼품과를 비롯하여 유교경전 이해도를 바탕으로 관리를 선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진골귀족들의 반발로 실패하고 만다. 고려 광종은 강력한 전제왕권을 꿈꿨는데, 이를 위하여 유교이념인 충과 효에 바탕을 둔 인재가 필요하였다. 이에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를 처음 시행하게 되었다.

고려시대 과거제는 제술과(製述科)·명경과(明經科)·잡과(雜科)로 구성되었다. 제술과와 명경과는 조선시대 문과와 비슷한 유형이었으며, 잡과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진다. 고려시대에는 무과가 없었다. 그러나 고려시대 과거는 제대로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제술과와 명경과 급제자는 전 시대를 합쳐서 1000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잡과는 기술직을 선발하는 제도였으며, 일부 승과가 시행되었으나 승려선발에 그쳤다.

조선시대의 과거제

조선시대에 와서 유교이념을 국가이념으로 삼으면서 과거제는 체계가 명확하게 정비되고, 관리선발의 주된 통로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 과거제는 소과·문과·무과·잡과 4가지 유형이 있었다. 보통 3년마다 1번씩 시행되었으나 비정기적으로 시행되는 시험도 많았다. 증광시(增廣試)·별시(別試)·알성시(謁聖試)·정시(庭試)·춘당대시(春塘臺試)는 모두 비정기 시험이었다.

소과는 일종의 예비시험으로서 소과에 합격하면 생원, 진사와 같은 칭호를 얻는다. 생원진사만 되어도 각종 역이 면제되는 등 사회적인 위상을 얻을 수 있으나, 높은 직위를 얻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생원, 진사에 합격한 이들은 성균관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문과에 급제해야 높은 지위를 얻는 길이 열렸다.

문과는 원칙적으로 생원, 진사만이 치를 수 있으나 사실상 전국의 유생들에게 모두 문호가 열려 있었다. 문과는 최종적으로 33인의 합격자를 배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무과문과와 원칙적으로 같이 시행하였다. 무과는 합격자를 28인이 원칙이었으나,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은 이후 군인을 확보하기 위하여 합격자를 1만명까지 늘이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무과에 합격한 이들은 의무적으로 서북변경에 근무해야 하는데, 이를 면제받기 위해서는 쌀을 내어야 했다. 따라서 무과 합격자들은 대개 쌀을 내고 위험한 서북변경의 방위를 맡지 않았고, 조선은 이렇게 거둬들인 쌀이 재정난의 타개책이 되었다. 따라서 조선무과합격자는 15만명에 달했다.

잡과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하위 기술직을 뽑기 위해서 실시되었다. 시험 종류는 이과(吏科)·역과(譯科)·의과(醫科)·음양과(陰陽科), 율과 등이 있었다.

과거제의 변질

과거제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크게 변질된다. 각종 시험비리가 난무하고, 과거 급제자수에 비해서 관직은 한정되어 있어 이로 인한 당쟁의 격화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이렇게 조선 후기에 크게 흔들린 과거제는 갑오개혁으로 1894년 폐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