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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난

2,363 바이트 추가됨, 2009년 3월 20일 (금) 13:48
새 문서: 조선 초기,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자들 간의 내분을 칭함. ===제1차 왕자의 난=== 조선 태조는 한씨 로부터 이방우, 이방과, [[이방...
[[조선]] 초기,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자들 간의 내분을 칭함.
===제1차 왕자의 난===
[[조선 태조]]는 한씨 로부터 [[이방우]], [[이방과]], [[이방의]], [[이방간]], [[이방원]], [[이방연을]] 두었다. 그리고 계비 강씨로 부터 [[이방번]], [[이방석]]을 두었다.

조선 태조는 왕위 계승을 할 때, 계비 강씨의 소생인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였다. 이것은 개국공신들과 강씨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도전]]을 비롯한 [[신진 사대부]]들은 한씨 소생이 왕위에 오를 경우 왕권이 전제화되고, 이상적인 정치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따라서 어리고 왕권이 미약한 왕을 세워, 이상적인 신권정치(신하 중심의 정치)를 이룩하고자 하였다.

[[이방원]]은 상황이 불리해지자 사병을 이끌고 [[정도전]]과 [[남은]]의 집으로 쳐들어가 살해하였다. 그리고 이복동생인 [[이방석]]을 세자에서 폐위시키고, 귀양보내는 도중에 살해해 버렸다. [[이방번]]도 역시 살해하였다. 이 사건으로 이방원의 유력한 세자 후보가 되었다. 그러나 이방원은 한사코 세자직을 사양하고 둘째 형인 이방과를 세자로 내세웠다. 이후 이방과가 왕위에 올라 [[조선 정종]]이 된다. ([[1398년]])
===제2차 왕자의 난===
[[이방간]]은 [[이방원]]의 형으로 이방원과 함께 1차 왕자의 난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의 세력이 항상 동생인 이방원에 못 미치자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방원을 공격하였고, 이방원 또한 맞받아쳤다. 그러자 개경(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잠시 개경으로 수도를 옮겼다.) 한복판에서 두 세력이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고, 여기서 이방간은 패배하였다. 이방간은 귀양 보내고, 이방간의 오른팔인 [[박포]]는 사형에 처해졌다. ([[1400년]] 1월)

이후 [[조선 정종]]은 이방원을 세제(왕위를 이을 동생, 세자와 같은 격)로 삼고, [[1400년]] 11월에 왕위를 물려주었다.

두 차례 왕자의 난은 이방원의 승리로 마감되었다. 이는 이방원의 왕권강화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분류:조선]]
[[분류: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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