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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암]]은 [[사비성]] 부근의 [[호암사]](虎巖寺)에 있었다고 전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에서는 [[좌평]]을 뽑을 때 후보 3, 4명의 이름을 이 [[정사암]] 위에 봉함해두었다가 뒤에 이를 열어 이름에 도장이 있는 자를 [[좌평]]으로 삼았다고 한다. 정사암 회의는 [[백제]] 후기의 귀족연합적인 정치운영형태를 보여준다. 이는 왕권의 약화와 연결된다. 유사한 것으로는 [[고구려]]의 [[제가회의]]와 [[신라]]의 [[화백회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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