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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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왕실 도서관의 기능을 한 기관.
세조 시대와 숙종 시대 일시 설치될 것이 건의되었으나 설치되지 못하였다. 그러다 정조가 즉위한 직후인 1776년 3월에 설치되었다. 정조는 규장각을 단순한 왕실 도서관이 아니라 자신의 정책을 시행할 비서실 기능까지 포함하고, 자신의 친위세력을 키울 목적으로 규장각을 설치하였다.
정조는 왕권의 기반을 규장각에 두려고 하였기 때문에 규장각 관리들은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규장각 관리들은 승지와 마찬가지로 임금의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기능에다 언관(言官)·사관(史官)·시관(試官)·경연관(經筵官) 기능 및 왕의 교서나 유서(諭書)를 대찬(代撰)하는 기능 등을 가졌다. 1782년 강화도에 외규장각이 완성되면서 한양에 있는 규장각은 '내규장각', 강화도에 있는 규장각은 '외규장각'이라 칭하게 되었다. 외규장각 문서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일부 탈취하였다.
규장각은 정조가 죽자, 규장각은 왕실 도서 관리 기능으로 축소되었다.
대한제국이 성립된 이후 고종 황제는 규장각에 비서실 기능을 얹어 다시금 강력한 규장각을 꾸렸다. 그러나 1910년 국권피탈로 규장각은 폐지되었다.
해방 이후 규장각은 서울대학교 부속 도서관이었다가 독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