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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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행궁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월산대군의 개인자택이었다고 한다. 1593년 선조의주에서 한양으로 돌아와 이곳을 거처로 삼았다. 이때는 '서궁'이라고 하였다. 궁으로 쓰기에는 협소하여 주변의 여러 저택을 포함시키고, 수차례의 증축을 거쳐서 어렴풋이나마 궁궐의 모습을 갖췄다. 조선 선조는 이곳에서 1608년 사망할 때까지 정사를 보았으며, 1611년 인목대비가 폐서인 된 이후 이곳에서 은거하였으며, 1623년 인조가 이곳 즉조당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훗날 왕실의 창고로서 왕비가 관리하였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대부분 조선말기의 것이다. 고종황제가 이곳에서 여생을 마쳤으며, 1919년 이후에는 주로 귀한 손님들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남았다.

경운궁에서 주목할 점은 석조전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해방 이후에는 미소 공동위원회의 회담장소로 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