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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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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7세기 중엽, 한반도의 패권을 두고 당나라신라가 벌인 전쟁. 신라당나라고구려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
*7세기 중엽, [[한반도]]의 패권을 두고 [[당나라]]와 [[신라]]가 벌인 전쟁.
[[신라]]와 [[당나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작전권은 대부분 당나라에게 있었고, 신라는 정예병과 당나라군의 보급 및 각종 지원을 하고 있었다. 당나라는 본래 신라와 연합군을 결성할 때에, 백제의 영토는 신라, 고구려의 영토는 당나라가 가진다고 약속하였다.

[[660년]] [[나당 연합군]]은 백제를 멸망시켰다. 하지만 당나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백제의 옛 땅에 5개의 도독부를 두어 당나라 행정구역에 편입시켰다.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켰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당나라는 [[663년]], 경주를 계림도호부라 칭하고 [[문무왕]]을 계림 도독으로 임명하는 일을 저질렀다. 이미 이 때 당나라는 한반도를 모두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이다.

결국 [[667년]]에 [[소정방]]이 [[김유신]]에게 피살당하고<ref>역사스페셜 44회, 미스터리 추적 소정방 피살사건</ref> ,[[ 671년]] 신라가 옛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킴으로서 나당 전쟁의 막은 올랐다. 신라는 옛 [[고구려 부흥 운동]]군과 백제 유민들을 지원하여 전선을 분산시켰으며, [[당나라]]는 [[고간]], [[이근행]] 등을 파견하여 [[고구려 부흥 운동]]군과 신라를 토벌하라고 지시했다. 처음에는 신라군이 불리했으나, 점차 기세를 회복하여 [[674년]]경에는 [[임진강]] 인근에서 치열하게 대치하였다.

당나라는 [[674년]], [[유인궤]]를 계림도 대총관으로 삼아 신라를 공격하고, 당나라에 있는 [[김인문]]을 신라왕으로 봉하여 신라 정벌을 단행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675년]]에 [[매소성]]에서 당나라 군 20만과 신라군 3만이 맞붙은 [[매소성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당나라군은 대패하고, [[676년]] 이듬해 벌어진 [[기벌포 전투]]에서도 당나라군은 대패하여 신라 정벌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신라는 북진하여 [[대동강]] 이남의 영토를 확보하였다.

나당 전쟁으로 벌어졌던 양국의 관계는 [[발해]]의 성립 이후 다시 가까워져 735년경에는 신라가 차지한 대동강 이남의 영토를 인정받았다.
===각주===
<references/>
[[분류:전쟁]]
[[분류:당나라]]
[[분류: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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