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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전라도]] [[고부군]]에서 일어난 민중항쟁, 과거에는 ''고부민란'' 등으로 불렸었다.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다.
===배경===
[[고부군]]수 [[조병갑]]은 [[1893년]]에 [[고부군]]에 부임하였다. 그는 수많은 폭정으로 군민들의 반발을 샀다. 그의 폭정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농민에게 황무지를 개간하게 하여 면세(免稅)를 약속하고서도 추수시에 강제로 세금을 받았다.
#군민들에게 온갖 죄목을 뒤집어씌워 2만냥 이상을 강탈하였다.
#[[태인군수]]를 지낸 부친의 비각을 세운다하여 1000냥 이상 수탈하였다.
#멀쩡한 제방을 놔두고 새로운 제방을 지었으며, 물에 대한 세금을 받아서 700여 섬을 횡령하였다.
===전개===
이에 [[전봉준]](당시 [[고부군]] [[동학]] [[접주]]) 등이 물에 대한 세금을 없애 달라고 진정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군민들은 상관인 [[전라감사]] [[김문헌]]에게도 진정하였으나 다시 거절당했다. 분노한 군민들은 [[전봉준]]의 지휘아래 1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관아를 습격하여 무기를 빼앗고, 강제로 징수한 쌀을 원주인에게 돌려줬으며, 억울한 사람들을 풀어주었다. 이 때가 [[1894년]] 1월이었다.
[[조병갑]]은 간신히 도망쳐, [[전라감사]]에 이 사실을 알렸다. [[조병갑]]은 파면되고, 귀양갔다. 후에 특이하게도 '[[독립협회]]'에 가입하게 된다.
한편 조정에서는 [[박원명]]이 새로 군수로 파견하여 문제를 수습하는 듯 하였으나, 안핵사로 파견된 이용태가 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다시 농민들을 잡아가두고 부녀자를 능욕하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 참다 못한 [[전봉준]]과 [[동학]]교도들은 3월 21일 백산에서 군사를 일으키게 된다. 이것이 바로 [[동학농민운동]]이다.
[[분류:사건]]
[[분류:조선]]
===배경===
[[고부군]]수 [[조병갑]]은 [[1893년]]에 [[고부군]]에 부임하였다. 그는 수많은 폭정으로 군민들의 반발을 샀다. 그의 폭정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농민에게 황무지를 개간하게 하여 면세(免稅)를 약속하고서도 추수시에 강제로 세금을 받았다.
#군민들에게 온갖 죄목을 뒤집어씌워 2만냥 이상을 강탈하였다.
#[[태인군수]]를 지낸 부친의 비각을 세운다하여 1000냥 이상 수탈하였다.
#멀쩡한 제방을 놔두고 새로운 제방을 지었으며, 물에 대한 세금을 받아서 700여 섬을 횡령하였다.
===전개===
이에 [[전봉준]](당시 [[고부군]] [[동학]] [[접주]]) 등이 물에 대한 세금을 없애 달라고 진정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군민들은 상관인 [[전라감사]] [[김문헌]]에게도 진정하였으나 다시 거절당했다. 분노한 군민들은 [[전봉준]]의 지휘아래 1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관아를 습격하여 무기를 빼앗고, 강제로 징수한 쌀을 원주인에게 돌려줬으며, 억울한 사람들을 풀어주었다. 이 때가 [[1894년]] 1월이었다.
[[조병갑]]은 간신히 도망쳐, [[전라감사]]에 이 사실을 알렸다. [[조병갑]]은 파면되고, 귀양갔다. 후에 특이하게도 '[[독립협회]]'에 가입하게 된다.
한편 조정에서는 [[박원명]]이 새로 군수로 파견하여 문제를 수습하는 듯 하였으나, 안핵사로 파견된 이용태가 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다시 농민들을 잡아가두고 부녀자를 능욕하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 참다 못한 [[전봉준]]과 [[동학]]교도들은 3월 21일 백산에서 군사를 일으키게 된다. 이것이 바로 [[동학농민운동]]이다.
[[분류:사건]]
[[분류: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