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 농민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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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전라도 고부군에서 일어난 민중항쟁, 과거에는 고부민란 등으로 불렸었다.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다.

배경

고부군조병갑1893년고부군에 부임하였다. 그는 수많은 폭정으로 군민들의 반발을 샀다. 그의 폭정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1. 농민에게 황무지를 개간하게 하여 면세(免稅)를 약속하고서도 추수시에 강제로 세금을 받았다.
  2. 군민들에게 온갖 죄목을 뒤집어씌워 2만냥 이상을 강탈하였다.
  3. 태인군수를 지낸 부친의 비각을 세운다하여 1000냥 이상 수탈하였다.
  4. 멀쩡한 제방을 놔두고 새로운 제방을 지었으며, 물에 대한 세금을 받아서 700여 섬을 횡령하였다.

전개

이에 전봉준(당시 고부군 동학 접주) 등이 물에 대한 세금을 없애 달라고 진정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군민들은 상관인 전라감사 김문헌에게도 진정하였으나 다시 거절당했다. 분노한 군민들은 전봉준의 지휘아래 1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관아를 습격하여 무기를 빼앗고, 강제로 징수한 쌀을 원주인에게 돌려줬으며, 억울한 사람들을 풀어주었다. 이 때가 1894년 1월이었다.

조병갑은 간신히 도망쳐, 전라감사에 이 사실을 알렸다. 조병갑은 파면되고, 귀양갔다. 후에 특이하게도 '독립협회'에 가입하게 된다.

한편 조정에서는 박원명이 새로 군수로 파견하여 문제를 수습하는 듯 하였으나, 안핵사로 파견된 이용태가 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다시 농민들을 잡아가두고 부녀자를 능욕하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 참다 못한 전봉준동학교도들은 3월 21일 백산에서 군사를 일으키게 된다. 이것이 바로 동학농민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