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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5 바이트 추가됨, 2018년 3월 23일 (금)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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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장 당시 [[청계천 복원]]으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서울 시내에 볼거리와 문화적 공간을 마련했다는 데에서는 찬사를 받았으나, 청계천 복원이 생태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었고(도올 선생 "큰 어항에 불과") 복원 과정에서 스토리가 담긴 상가가 사라졌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교통체계 개편으로 환승시스템이 정착되는 등 발전을 이루었다. 교통체계 개편 당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가 모델로 삼은 도시는 [[브라질]]의 [[꾸리찌바]]라고 한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BBK]]의혹과 [[다스]], [[도곡동 땅]] 문제가 불거졌으나 '경제대통령'을 구호로 지리멸렬한 민주·진보진영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당선됐다. 당선 직후 [[BBK 특검]] 수사를 받았으나 사실상 특검이 무혐의로 그를 풀어 주었다. 대통령 취임 이후 불통과 인사 참사로 어려움을 겪다 광우병 촛불집회로 벼랑 끝까지 몰렸다 겨우 회생했다. 또한 [[2008년]]부터 불어닥친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2008년 금융위기 | 세계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치솟는 등 경제가 흔들렸다. 그 과정에서도 무리한 환율개입과 리먼브러더스 인수 시도 등으로 비판을 자초했으나 한편으로는 통화스와프 등을 체결해 금융위기를 비교적 완만하게 극복했다. 부동산 폭락 우려가 있자 저금리와 금융규제 완화로 부동산시장을 활성화시켰지만([[10.21 부동산 대책]] ) 이는 훗날 [[가계부채 ]] 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재벌중심주의, 수출 중심, 부동산개발 중심 경제정책으로 일관했다.
*한편 [[방송사 언론장악]]을 비롯해 지난 정부에 대한 보복을 감행해 [[박연차]] 게이트를 터뜨려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을 구속했다. 급기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역풍을 맞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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