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뀜

이동: 둘러보기, 검색

최씨 무신 정권

4,034 바이트 추가됨, 2008년 7월 30일 (수) 12:32
편집 요약 없음
*[[고려]] 후기 4대에 걸쳐 고려를 지배한 무신 정권.

===[[최충헌]]의 집권===
[[최충헌]]은 [[1196년]] 동생인 [[최충수]]와 함께 [[이의민]]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동생 [[최충수]]와 갈등을 빚은 끝에 동생을 살해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1198년]] [[만적]]의 봉기를 진압하고, 정권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또한 오랫동안 자신을 도와준 조카 [[박진재]]를 죽여서 독재권력을 완성하였다. 그는 [[고려 명종|명종]]과 [[고려 희종|희종]]을 폐위시키고, [[고려 강종|강종]]이 죽자 [[고려 고종|고종]]을 즉위시켰다. 이 과정에서 [[1211년]] [[고려 희종|희종]]이 [[수창궁]]에서 [[최충헌]]을 죽이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고려 희종|희종]]은 폐위되었다. 이렇게 잦은 왕위 교체로 권력을 장악한 그는 후대에까지 물려줄 권력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1206년]]에는 [[교정도감]]을 설치하여 모든 관리들을 감시·통제하여 사실상 정권중추기관으로 만들었다. 이후 대대로 교정도감의 최고직인 교정별감에 오르면 정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다른 무신 정권과는 달리 문무를 완전히 장악하고 권력의 분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서 많은 암살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결국 그 위기를 모두 넘기고 강력한 권력을 장악하고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줄 수 있을 정도로 권력을 안정화시켰다.
===[[최이]](최우)의 집권===
[[1219년]] 아버지 [[최충헌]]이 죽자, 권력을 이어받았다. 동생 [[최향]]을 제거하여 권력을 독점하였다. 이후 재산의 일부를 국가에 바치고, [[몽고의 침입]]에 대비하는 등 일시적인 개혁조치를 단행하였다. [[1225년]]에 [[정방]]을 설치하여 자기 집에서 모든 인사를 처리하였으며, [[도방]]을 확대하여 [[내도방]]과 [[외도방]]을 두었다. 이것은 그의 권력을 더욱 확고히 하려는 것이었다.

[[1231년]]부터 [[몽고의 침입]]이 시작되자, [[1232년]]에 [[강화도]]로 천도하였다. 이는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개인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이뤄진 조치였다.

초기에는 개혁조치를 시행했지만, 이후 사치와 수탈을 일삼아 백성들에게 원성을 들었다. [[1249년]], [[최항]]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죽었다.
===[[최항(무신정권)|최항]]의 집권===
[[최항]]은 어린 시절 불량배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리하여 [[최이]]가 절에 보냈다. [[최이]]가 병이 들자 그를 불러들여 각종 고위직을 겸하다, [[최이]]가 죽자 권력을 승계받았다. 권력에 대한 불안감이 많아서 [[김경손]] 등을 포함해서 많은 고위관료들을 죽였다. 초기에는 역시 개혁정책을 폈으나, 곧 사치와 향락에 빠져서 백성들의 원망을 샀다.

[[몽고]]에 대해서 지속적인 저항을 선언했으나, 그로 인해 [[몽고]]군이 전국토를 유린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에 그는 [[고려 고종|고종]]을 보내어 겨우 [[몽고]]군을 철군시켰다. [[1257년]]에 갑자기 죽었다.

===[[최의]]의 집권과 붕괴===
그는 노비 출신의 어머니를 두었으나, [[최항]]이 따로 자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집권할 수 있었다. [[최항]]이 갑자기 죽자, 그의 부하들의 추대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역시 초기에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 창고를 여는 등 선정을 펼쳤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노비에게 관직을 주는 등 [[고려]] 귀족들의 반발이 심했기 때문에 권력은 순탄치 않았다. 이어 [[1258년]] 대사성 [[유경]] 등에 의해서 살해되면서 최씨 무신 정권은 종지부를 찍었다.

===관련링크===
*[[무신 정권]]
*[[몽고의 침입]]

[[분류:고려]]
익명 사용자

둘러보기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