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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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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사장 및 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중동 특수에 힘입어 많은 공사를 수주했으나, 저가 수주나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훗날 현대건설이 부도위기에 놓이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있다.
서울특별시장 당시 [[청계천 복원]]으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서울 시내에 볼거리와 문화적 공간을 마련했다는 데에서는 찬사를 받았으나, 청계천 복원이 생태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었고(도올 선생 "큰 어항에 불과") 복원 과정에서 스토리가 담긴 상가가 사라졌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교통체계 개편으로 환승시스템이 정착되는 등 발전을 이루었다. 교통체계 개편 당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가 모델로 삼은 도시는 [[브라질]]의 [[꾸리찌바라꾸리찌바]]라고 한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BBK]]의혹과 [[다스]], [[도곡동 땅]] 문제가 불거졌으나 '경제대통령'을 구호로 지리멸렬한 민주·진보진영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당선됐다. 당선 직후 [[BBK 특검]] 수사를 받았으나 사실상 특검이 무혐의로 그를 풀어 주었다. 대통령 취임 이후 불통과 인사 참사로 어려움을 겪다 광우병 촛불집회로 벼랑 끝까지 몰렸다 겨우 회생했다. 또한 [[2008년]]부터 불어닥친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2008년 금융위기 | 세계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치솟는 등 경제가 흔들렸다. 그 과정에서도 무리한 환율개입과 리먼브러더스 인수 시도 등으로 비판을 자초했으나 한편으로는 통화스와프 등을 체결해 금융위기를 비교적 완만하게 극복했다. 부동산 폭락 우려가 있자 저금리와 금융규제 완화로 부동산시장을 활성화 시켰지만 이는 훗날 가계부채 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재벌중심주의, 수출 중심, 부동산개발 중심 경제정책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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