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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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해안에 위치한 군.

역사

선사시대

안면도( 安眠島)의 고남면에서 발견된 10여 개소의 패총, 이른바 고남 패총군과 남면의 달산 패총군은 모두 신석기 시대의 유적인데, 이 속에서 출토된 한 두 점의 구석기 유물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었다. 이 같은 유적과 유물들로 미루어 보아, 우리 태안 지역에는 지금으로부터 4500~5000년경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대

마한 54개국 중에서 충청남도 내에 위치했던 나라는 모두 16개국이며, 이 중에서 태안에 자리한 나라는 신소도국(臣蘇塗國)과 고랍국(古臘國)인데, 신소도국은 지금의 태안읍 동문리 백화산 기슭의 샘골(一名斜陽洞)이며, 고랍국은 고남면 고남리에 있었다.

앞에서 약술한대로 마한 54개국 중에서 가장 유력한 중심국이 충남의 직산(稷山)에 위치했던 목지국 이었는데, 이 목지국의 진왕(辰王)이 정치적으로 최고의 연맹장이 되어 주변 여러 나라를 통치했으며, 따라서 태안에 위치했던 신소도국은 제천 의식의 중심국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신앙적인 소도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태안의 구명(舊名)이 소태(蘇泰)·소주(蘇州)·소성(蘇城)등이었던점도 소도(蘇塗)와의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고찰해 볼 때, 태안은 일찍 4세기경부터 마한의 제천 의식 중심국으로서 신앙적인 소도의 종주국이었음을 이해케 한다.

290여년간 백제의 영토였던 태안(성대혜현)은, 신라의 3국 통일로 인하여 통일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어 소태현(또는소주)이라 불리며 270여년 내려 왔으나, 오늘날 신라의 문화재로 보존되어 오는 것은 매우 희소하여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 과 태안여상이 소장하고 있는 몇 점의 토기가 있을 뿐이다.

중세

왕건이 고려를 세워 다스리기 시작한지 무려 65년이 지난 성종(成宗)2년(983)에, 전국을 12주로 나누어 중앙에서 목사(牧使)를 파견하였다.

이 12주(州)는 ①광주(廣州) ②양주(揚州) ③황주(黃州) ④해주(海州) ⑤충주(忠州) ⑥청주(淸州)⑦공주(公州) ⑧전주(全州) ⑨나주(羅州) ⑩승주(昇州) ⑪상주(尙州) ⑫진주(晋州)등인데, 공주가 충청남도에 위치해 있었으며 이때의 태안은 공주 목의 관할 지역이 되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난 성종 14년(995)에 다시 관제 개편을 단행하여 전국을 10도(道) 4도호부(都護府)로 나누고 12목의 목사를 절도사(節度使)로 개칭하였다.

이때 설치한 10도중 하남도(河南道)가 지금의 충청남도에 해당되는데, 이 하남도는 공주와 운주(運州)로 이루어 졌었다.

또한 이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현종(顯宗)9년(1018)에 다시 행정 구역이 개편되어 전국을 5도 양계(五道兩界)로 나누고 그 안에 3경(京)·4도호부(都護府)·8목(牧)·15부(府)·129군(郡)·335현(縣) ·29진(鎭)을 설치하고 다시 그 밑에 촌(村)·향(鄕)·소(所)·부곡(部曲) 등을 두었는데, 이때 태안은 지금의 홍성인 운주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충렬왕(忠烈王)24년(1298)에 소태현(蘇泰縣) 출신 이대순(李大順)이 원(元)으로부터 총애를 받아 소태가 태안(泰安)으로 개칭되고 따라서 군으로 승격되었다.

이렇게 태안으로 개칭되어 오늘까지 무려 700년 가까이 불리워지고 있는 태안의 명칭은,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준말로서 국가가 태평하고 국민이 평안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준말인 태안만의 의미론 「태평하고 안락하다.」는 내용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바로 태안인 것이다.

조선시대

조선조의 지방 관제를 살펴보면 전국을 경기도·충청도·경상도 ·전라도·강원도·황해도·함경도·평안도 등 8도로 나누어 그곳에 관찰사를 파견시켜 다스리게 하고, 그 밑에는 부(府)·대도호부(大都護府)·목(牧)·도호부(都護府)·군(郡)·현(縣) 등을 설치하여 관찰사의 관할 하에 두고 각각 업무를 집행케 하였다.

그 후 1413년 (태종13)에 군현 제도를 대폭 개편하였는데, 특히 경상도에 딸려 있던 황간(黃澗)·옥천(沃川)·영동(永同)·청산(靑山)·보은(保恩) 등을 충청도의 관할 하에 편입시켜 동쪽으로는 단양(丹陽)과 죽령(竹嶺), 서쪽으로는 태안의 소근포 남쪽으로는 은진 그리고 북쪽으로는 직산과 아산에 이르니 동서로는 477리, 남북으로는 244리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으로서, 이 관할 지역 내에는 4목(牧)·14군(郡)·34현(縣)을 두었으며, 이때의 태안(泰安)은 14군중의 하나였고 따라서 군수는 종4품이었다.

태안군(泰安郡)은 고려조의 충렬왕 때 개칭된 명칭인데, 처음에는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衛)가 수령을 겸하다 뒤에 부사가 방어사를 겸하다 뒤에 부사가 방어사를 겸하여 병마의 실권을 장악했었다.

근현대

일본 강점기었던 1914년에 이르러 그들의 통치수단의 일환으로 행정구역개편을 단행하면서 태안군을 폐합하여 서산군에 예속시킴으로서 면으로 격하 됬었다.

태안군은 타의에 의해 서산군에 병합되어 75년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법률 제 4050호에 따라 태안군에 복군됨으로서 군민이 모두 군세 발전에 활기 찬 전진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리고 태안군은 현재 행정구역상 8개 읍면에 65개 법정리, 179개 행정리에 781개의 반, 그리고 493개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개요

  • 인구: 64,000명
  • 면적: 약 505 제곱킬로미터
  • 행정구역: 2개의 읍, 6개의 면, 184개의 리.
  • 군수: 진태구 군수
  • 예산: 2,099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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