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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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1876년 개항 이후 근대적 개혁정책에 대한 반발세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대부 가운데 일부는 위정척사파가 되었으며, 5군영이 해체되고 신식군대인 별기군이 생겨나자, 5군영에 소속된 군인들의 불만도 높아져갔다. 또한 과거 5군영 군인들과 별기군과의 차별이 심해지자, 옛 5군영 소속 군인들은 분노하여 봉기를 일으켰다. (1882년 6월)
여기에 명성황후를 비롯한 민씨척족들의 부패와 무능은 흥선 대원군 시기에 겨우 안정시킨 백성들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백성들은 봉기군이 합류하였다. 봉기군은 궁궐을 점령하고, 흥선 대원군을 추대하였다. 흥선 대원군은 이 일을 계기로 정권을 재탈환 하였다.
하지만 친청 사대파인 명성황후 세력이 사라지면 조선 안에서의 입지를 우려한 청나라군의 개입으로 봉기군은 진압당하고, 흥선 대원군은 청나라 군대에 의해 천진으로 끌려가고, 명성황후가 복귀하였다. 또한 일본군도 이때 출동하여 이것을 빌미삼아 조선에 여러 사항을 요구하였다. 이 사건을 수습하는 가운데 제물포 조약이 성립되었고, 조선은 일본과 청나라에 압박 속에 놓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