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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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뿌리

  • 초기 근대화세력(메이지유신 세력)
  • 일본 군국주의, 제국주의 세력(침략전쟁을 일으킨 세력)

세력기반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

자유민주당(自由民主黨):일본자유당(日本自由黨)과 일본민주당(日本民主黨)이 1955년 10월에 보수합동에 의해 성립된 정당으로, 1947년일본 사회당 내각을 제외하고는 그 전신인 민주자유당(民主自由黨)이 1948년 10월 제2차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내각을 출범시킨 이래 계속 정권을 확보해왔다. 1993년 8월 제1야당으로 전락해 '55년체제'가 붕괴되었다. 2001년 4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郞]가 자유민주당, 공명당, 일본 보수당 3당의 지지로 제87대 총리로 취임하였다. 2006년 90대 총리로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이 선출되었다.

자민당은 1990년대 중반 각종 부패스캔들로 정권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일본 사회당신당 사키가케 등을 끌어들여 사회당 연립정권을 발족시켜 다시 여당으로 복귀하고 1996년 무라야마 총리 퇴진 후에는 총재 하시모토 류타로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1998년 오부치 게이조가 당수에 선출되어 총리에 선출되었고, 그는 정권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자유당당수 오자와를 영입해 1999년 자유당과 연립정부를 출범하였다. 자유민주당은 기본정책으로서 외교·안보면에서는 미일 안보조약을 축으로 하여 자위력(自衛力) 증강을 주장하고, 내정면에서는 경제의 고도성장 정책을 펴왔다. 그리고 전쟁포기를 규정한 현헌법의 개정을 기도하고 있다. 주요 지지계층은 농어민, 경영자, 관리직, 판매서비스, 노무직 등으로, 중소도시·농촌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무려 60년 넘게 정권을 유지해 온 극우, 보수정당이다.

옛 군국주의 세력

현재 상당수의 정치인이 15년 전쟁 당시 주요 요직에 있던 일본 군국주의(제국주의) 세력의 후예들이다.

  • 고이즈미 준이치로: 고이즈미 마타지로의 손자. 고이즈미 마타지로는 일본 내 좌파를 몰아내는 데 앞장선 극우정치인. '협객'출신으로 테러를 통하여 좌파를 공격하였다.
  • 아베 신조: 그의 외할아버지는 56~57대 일본 수상,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다. 아베 신조가 지금 펼치고 있는 초강경 보수정책의 원류라고 칭해진다. 아베 신조 본인과 그의 어머니가 말한 이 둘의 정책적 유사점은 명백하다. '평화헌법 개정과 군사력에 대한 강한 집착'이다.

야쿠자 세력

도야마라는 사무라이가 있었다. 그는 10대에 고구마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으며 20세에 들어와서 정치적인 야망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반란의 실패를 직접 보면서 혁명적인 개혁이 얼마나 무능한가를 몸소 느낀 도야마는 교시샤라는 일본 극우주의 단체를 조직한다. 그의 주도적인 역할로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이 조직에 참여하였으며 점차 그 세력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도야마는 자신의 근거지인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조직폭력배를 규합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그 지역을 장악하는 범죄단으로 키운다. 그는 자신의 불우했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으며 빈민들과 거지들, 고아들을 돕는데 앞장섰다. 그래서 그런지 비록 야쿠자 오야붕이기는 하였지만 지역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도야마는 그간 자신이 모았던 세력을 하나로 합쳐 현양사(玄洋社)라는 조직을 만든다. 이 조직은 일본 국수주의를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으면서 일본의 대동아경영에 앞장서고자 노력하였다. 국가에 충성하고 일본국왕에게 몸을 바치는 것을 근본이념으로 하고 있으면서 여기에 불응하는 자는 폭력으로 응징할 것을 결의하였다. 현양사의 조직은 일본 메이지정부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되었다. 군국주의에 반발하던 많은 재야인사에 대한 탄압을 이들을 이용할 수 있었으며, 정부가 해선 안 될 불법적인 일들이 전부다 현양사에게 주어졌다.

흔히 이야기하는 근대적 정치깡패조직으로서 현양사는 많은 일을 해내었다. 데끼야와 바쿠토가 지하세계의 조직범죄단으로 이야기되면 이들 현양사는 고급정치깡패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현양사조직원들은 군국주의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수행하였다. 특히 민족적 저항이 심한 한국과 중국에 대량으로 파견되어 요인암살이나 정보수집, 사회교란과 같은 스파이업무까지 담당하였다.

현양사는 기존의 일본깡패들이 체제를 바꾸는데 있어서 하나의 전형이 된다. 쉽게 말해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깡패조직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들은 암흑세계의 야쿠자들과는 질적으로 현격한 차이를 보이면서 일본의 제국화에 큰 기여를 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본국내의 정적들을 제거하는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였다. 메이지정부의 내무대신은 자신의 사병으로 현양사를 활용하였으며 이것이 상당한 효과를 가져왔다.

정치깡패는 합법을 가장한 불법적인 사업을 벌이기 시작한다. 특히 지금까지도 문제시 되고 있는 것이 종군위안부문제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당시 일본정부는 국제적인 비난을 우려하여 종군위안부의 모집과 공출을 야쿠자에게 시켰다. 시켰다는 표현보다는 묵인하였다는 표현이 다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야쿠자는 한국에서 수십만 명의 여성을 필리핀이나 싱가폴, 중국과 같은 전장으로 보냈으며 거의 대부분의 여성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야쿠자는 종군위안부의 모집과 이들의 관리를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1997년 9월 한국이 고향임을 확인한 캄보디아의 훈 할머니도 강제로 공출되었던 종군위안부의 일원이었다.

야쿠자의 발전은 당시 군국주의와의 결합을 가장 큰 정점으로 하고 있었으며 군국주의 쇄망으로 인해 범죄집단으로 몰락하게 된다. 군국주의 폭력단의 원조였던 도야마 이치루는 1944년 89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가 그래도 행복한 보스였던 것은 일본이 패망한 모습을 보지 않고 그보다 일찍 죽었다는 점이다. 도야마 이치루의 영향을 받은 야쿠자는 후에도 정치에 개입하여 이곳저곳에서 사고를 낸다.

언론 출판 세력

기타 세력

  •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 새역모, 2001년 왜곡 교과서 파동을 주도했던 세력이다. 최근에는 후쇼사에게 밀리고 있다.

주요 논리

  • 1931년부터 시작된 15년 전쟁은 아시아 해방전쟁이다.
  • 한국대만, 만주에 대한 식민통치로 인해서 이들은 근대화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식민지 근대화론
  • 1945년의 항복은 패전이 아니라 인류문명을 지키기 위한 천황의 성스러운 결단이다.
  • 일본1945년 원폭 투하로 역사상 유일하게 핵피해를 입은 피해국이다.
  • 일본이 군대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국가라 할 수 없다.
  • 일본 교과서나 역사서에서는 지나치게 일본이 가해자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 일본은 이웃나라들에게 늘 당하는 나라이다.

한국에 대한 인식

  • 독도문제: 독도는 17세기까지 주인 없는 땅이었으며, 일본이 독도를 처음 발견하고 오끼도 관할하에 두었다. 일본이 패망하자 한국이 무단으로 점유한 일본영토다.
  • 역사문제: 역사는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임나 일본부설 등의 학설도 충분히 설명 가능한 학설이다. 역사는 자유롭게 쓰여질 수 있다. 이것을 소위 자유주의 사관이다. 자유주의 사관에서 한국사를 마음대로 다루고 있다.
  • 식민통치에 대한 인식: 아시아 민족의 해방과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 북한에 대한 인식: 일본인들을 납치한 사악한 국가이다. "북한의 체제 붕괴를 유도해야”하고 “평양에는 냉이도 나지 못하도록 하겠다"-아베 신조

일본 내 비판세력

  • 공영방송 NHK의 개혁적 프로듀서, 작가
  • 진보적 교사모임(우리의 전교조에 해당되는)
  • 법률가, 대학교수 및 학계. 그러나 이쪽도 급속히 극우화되고 있음.
  • 아사히 신문-일본의 개혁언론.
  • 일본 공산당, 일본 사회당 등 좌파정당
  • 아사히 신문의 8면에 달하는 초대형 사설(일본 평화헌법 60주년을 맞이하여)[1]

일본 공산당

일본 공산당(日本共産黨):1922년 지하조직으로 결성된 후 전후 합법정당으로 공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시적으로 세력을 떨쳤으나, 점령군에 의한 탄압 및 과격한 전술로 말미암은 국민의 지지상실 등으로 해서 크게 후퇴하였다. 미일 안보조약 폐기, 비무장중립, 자주방위, 독점자본 본위의 경제성장정책 반대 등 자유민주당에 가장 대결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지층은 자본주의체제의 비판세력으로 지식인 계열(교수, 학계), 일반노동자 및 중소기업자 등을 들수 있다.

한국과 연결고리

역사적 뿌리

  • 친일반민족행위자: 일본의 군국주의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사람들. 이들의 이념은 당연히 일본 극우주의이다.
  • 친일파의 영향을 받은 학계, 경제계, 정치 인사

보수학계

  • 역사학계: 식민역사학자들이 대게 일본인 스승 아래에서 역사를 배웠다. 이들을 실증주의 학파라 부른다. 서울대 이병도 교수-이기백 교수로 이어지는 보수학계가 대표적이다.
  • 경제학계: 가장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학계다. 한국무역론에는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의 근대화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었다'라고 하면서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 문학, 예술학계: 대게 친일 학자들과 그 제자들로 이루어진 학파가 있다. 최근 문학계에서는 많이 퇴출된 상태이다.
  • 연세대학교 등 일본 극우자금(아시아 연구재단)이 개입된 학교

경제계

  • 박태준(전 포항제철 회장, 전 국무총리)
  • 대기업들의 경영전략, 초기 자금줄이 일본에서 유입.
  • 현재 대부업체들의 상당수가 일본 극우재벌의 돈으로 만들어졌음.

언론

  • 조선일보: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야쓰히로'의 책들을 조선일보사에서 출판해 줌. 대체적으로 일본의 보수세력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음.
  • 중앙일보: 최근 일본 극우세력과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음. 세지마 류조(일본 극우 경제인)와 박태준 전 총리와의 대담을 2007년 3월 26일 1면과 5면 전면을 통하여 실었으며, 2007년 3월 18일 창간호 칼럼에는 일본의 또다른 극우총리인 '나카소네' 전 총리(일본 핵무장 발언으로 유명한 총리)의 칼럼을 논설 메인으로 실었음. 참고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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