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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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기(成己)혹은 성이(成已)라고 불린다. 거의 비슷한 한자이기 때문에 글자 해독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듯하다.

고조선의 대신이었다. 왕검성 내에서 우거왕의 중앙집권책에 동조하는 세력이었다. 기원전 109년 한나라고조선에 침공하자, 고조선한나라와 끝까지 싸우자는 세력과 타협을 하자는 세력으로 나뉘어진다. 이때 우거왕우거왕일파는 강경파에 속했다.(초기에는 우거왕도 타협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한나라가 뻣뻣한 자세로 나오자 교섭은 결렬되었다.)

지방에 기반을 둔 귀족세력(조선상 노인, 니계상 참 등)은 우거왕의 중앙집권책에 반대하는 세력이었다. 이들은 우거왕의 강경책에 반대하여 한나라와 타협하려 하였다. 이들이 우거왕을 죽이고 왕검성을 통째로 항복시키려 하였으나, 성기가 끝까지 성문을 지키고 왕검성을 사수하였다. 이때 왕검성 내에서는 항복한 이들의 잔당이 남아 있었는데, 우거왕의 아들 '장항'과 앞서 투항한 조선상 노인의 아들인 '최'라는 사람이었다. 장항과 '최'는 성기를 죽이고 왕검성의 성문을 열어 항복하였다. 이때가 기원전 108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