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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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무신들에 의해 일어난 정변. 좁은 의미로 "정중부의 난"이라고도 칭하나 그것은 사건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우리가 아는 무신정변은 서기 1170년 정중부에 의해 촉발되었으나, 이보다 150년 전인 1014년(현종 5년)에 최질, 김훈 등에 의해 잠시 무신들의 항거가 있었고, 이것이 차츰차츰 쌓여 의종~명종 시기에 본격화하여 무인정권이 들어서고, 삼별초의 난으로 그 끝을 맺게 되는 역사적 흐름을 말한다.

고려가 점차 성장함에 따라 유교적 흐름이 지배계층에 팽배하게 되고, 과거제를 도입하여 문(文)을 중시하게 되면서 자연히 고려 상류사회는 무신들을 얕보게 되었다. 일례로 무신의 최고 반열인 상장군은 정3품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거란 침공, 묘청의 난 진압 등 굵직한 군사적 사건에서도 최고사령관은 줄곧 문신들이 독차지 하였다. 강감찬윤관, 김부식 모두 문관으로서 군을 통솔하였다.

1014년(고려 현종 5년)에 급증한 관리들의 봉급을 해결하기 위하여 조정에서는 개경의 군사들이 운영하는 토지를 몰수하였다. 이에 격분한 무신 최질·김훈 등은 반란을 일으켰고, 몰수결정을 내린 황보유의·장연우 등을 귀양보내고 일시적으로 정권을 잡았으나, 서경(평양) 장락궁에서 열린 연회에서 모두 체포당해 살해되었다.

이후 역대 고려 임금들은 무신을 억눌러 반란의 가능성을 없애고자 하였다.

무신들의 홀대는 더욱 심해졌고, 무신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특히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아버지의 위세를 믿고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우는 등 문신들의 무신홀대는 그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김부식이 이 소식을 듣고 오히려 정중부를 꾸짖었다. 정중부는 이때부터 문신들에 대한 지독한 환멸을 느꼈다.)

1170년 4월, 의종이 정사를 돌보지 않고 너무 자주 놀러다니자 무신들은 이를 기회삼아 거사를 치르려고 모의하였다. 드디어 1170년 8월, 무신들은 의종보현원에 행차하자 이를 무신들이 호송하였다. 연회가 무르익자 호송무신들은 신호에 따라 문신들을 모두 죽여버렸고, 궁궐에 난입하여 문신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렇게 하여 무신들은 정권을 잡게 되었다. 이 당시 활약한 인물은 정중부(대장군), 경대승, 이의방, 이고 등이었다.

정권을 잡은 무신들은 다음달인 1170년 9월, 의종과 태자를 내쫓고 새로 임금을 세웠으니, 이가 바로 '명종'이다. 그러나 명종은 무신들에 의해 세워진 꼭두각시 임금에 불과했다. 이 때부터 무신들의 집권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