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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7시간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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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et>adsense</htmlet>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대로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다못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앙재난대채본부에서 그 유명한 구명조끼 발언 등에서 배가 가라앉은 사실을 아예 모르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잇따랐다. 따라서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러 억측과 의혹이 있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최초로 의문을 제기한 곳은 [[조선일보]]로 최보식 기자 칼럼(2014년 7월 18일자)을 통해 제기됐으며, 이후 2014년 8월 3일 산케이신문 한국지사는 최 기자 칼럼에 루머를 보태 의문을 확산시켰다. 이에 박 전 대통령 측은 분명한 해명을 하지 못하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가 열리고 난 후 2016년 11월 19일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이것이 팩트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해명을 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내용이 다른 자료들과 불일치 하는 등 오류가 많았다. 결국 [[서울중앙지검]]은 [[2018년]] 3월 28일 '세월호 사고 보고 시각 조작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당시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 상황을 재구성했다. 아래 내용은 서울중앙지검의 설명이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19분, [[김기춘]] 비서실장·[[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등은 텔레비전 보도를 보고 [[세월호]] 침몰 사실을 인지.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상황팀은 9시 24분경 문자메세지를 통해 청와대 내부에 공지.
#신인호 센터장은 10시 12분경 상황보고서 1보를 완성했고, 상황병이 보고서를 관저에 들고 뛰어서 감.
#10시 12분 이후 김장수 실장은 다시 관저에 전화를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받지 않음. 한편 안봉근 비서관도 본관에서 나와 [[이영선]] 행정관과 함께 관저로 향함.
#10시 17분 세월호 희생자 박모 씨에게서 마지막 카카오톡 수신, 이후 세월호와 연락이 완전 두절. 세월호 전복으로 사실상 침몰.
#보고서를 들고 간 상황병이 10시 19분에 관저 내실 근무자인 71세 김모 씨에게 보고서를 전달.
#그러나 김 씨는 상황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전달하지 않고, 평소처럼 박 전 대통령 침실 앞 탁자 위에 올려둠.
#10시 41분, 의무실 간호장교 관저로 들어가 의료용 가글 전달.
#11시 20분, 국가안보실, 상황보고 3보 완성 후 관저로 출발.
#14시 15분, [[최순실 ]] 관저 방문, 박근혜·이재만·정호성·안봉근과의 [[박근혜]]·[[이재만]]·[[정호성]]·[[안봉근]]과 회의 후 박 전 대통령 중앙재난대채본부 방문 결정.
#17시 15분, 박 전 대통령 김기춘 비서실장과 중대본 방문. 박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이경옥 차관 "갇혀 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의미가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박 "아, 갇혀 있어(끄덕)" 박 "지금 이제 5시가 넘어서 일몰 시간이 가까워오는데 어떻게든지 일몰 전에 생사 확인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미스테리한 발언을 함. 이 발언을 보면 배가 침몰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추정됨.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짓 해명==
*박근혜 전 대통령 측은 2016년 11월 19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이것이 팩트입니다'라는 제목으로 7시간에 대해 해명했다. 대부분 허위 내용으로 파악됐다.*오전 9시 53분 '외교안보수석실'로부터 최초 서면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10시 00분 국가안보실로부터 종합 서면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10시 15분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를 해서 지시사항을 내렸다고 한다. 10시 22분 국가안보실장에게 추가 지시사항을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검찰 발표 대로 박 전 대통령은 10시 20분에야 침실에서 최초로 외부와 소통이 됐다. 그리고 그 시간 이전 서면 보고 내용도 없었다.*또한 최순실의 청와대 관저 방문과 여기서 회의를 통해 중앙재난대책본부 방문이 결정된 사항도 누락됐다.
[[분류: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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