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싱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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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식민지 세력과 영국 간의 갈등이 점차 높아지던 1775년. 당시 매사추세츠의 주민들은 무기와 탄약을 모아두고 `민병대`를 결성하였다. 민병대는 영국군이 공격해 오기만을 기다렸다. 보스턴에 주둔해 있던 영국 장군 토머스 게이지(Thomas Gage) 장군은 `렉싱턴`부근에 있다고 알려진 독립지도자 `샘 어덤스`와 `존 핸콕`의 체포하는 것을 망설였다. 그러나 보스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콩코드`에서 많은 양의 탄약을 식민지 민병대가 저장한 것을 알고는 1775년 4월 18일 밤에 1000명의 병력을 렉싱턴에 파견했다. 이는 식민지 민병대에 포착되었다. 다음날 렉싱턴에 도착했을 때, 식민지 민병대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다. 1775년 4월 19일이었다. 미국 독립전쟁을 위한 첫 총성이 울려퍼진 날이다.

이 전투로 식민지 민병대 8명이 죽고, 10명이 다쳤다. 영국군은 식민지 군의 3배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