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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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마지막 굿당.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나 단종 복위를 계획하다 실패해 처형당한 뒤 무속신앙에서 신격화된 금성대군을 주신으로 모신 나라굿당이다. 전문가들은 금성당이 나라굿을 거행한 굿당 중 현재까지 원형이 잘 보존된 굿당이라고 설명한다.

금성당은 ‘ㄱ’ 자 모양의 정면 5칸짜리 19세기 목조 건축물. 보통 정면 1칸 크기인 마을굿당에 비해 건축물과 섬돌 규모가 커 나라굿당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왕실의 큰 행사 때 사용한 물품 목록을 적은 ‘궁중발기(宮中撥記)’에 왕실이 금성당에 치성 물품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굿당 안의 제기(祭器)는 19세기 관요(국가 운영 가마 터) 백자이며 ‘할머니’ 등 희귀 무신도가 다수 남아 있어 문화유산 가치가 높다.

훼손위기

2006년 초 SH공사는 뉴타운 개발 계획 수정에 따른 경제 손실을 이유로 금성당 이전을 추진했으나 지난해 5월 금성당을 조사한 문화재위원회는 “서울에 남은 무속신앙의 대표적 유적이고 19세기 건축물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며 지맥이 있는 터 자체의 역사적 의미도 크다”며 본래 자리에 보존 복원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SH공사는 ‘금성당 현상 보존 계획’을 마련했으나 2007년문화재청에 “금성당 이전을 적극 검토해 달라”는 공문을 보낸 이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