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대한민국의 방송인, 정치인. 대한민국 17대 대통령 선거에 대통합 민주신당(이하 통합신당)의 후보이다.
목차
학력
경력
- 1974년. 유신반대 운동중 투옥. 강제 징집
- 1978년. 문화방송 보도국 기자
- 1995년. 문화방송 뉴스데스크 앵커
- 1996년. 정계투신. 새정치 국민회의 소속 15대 국회의원
- 2000년. 새천년 민주당 대변인
-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 창당
- 2004년 1월. 열린우리당 당의장
- 2004년 7월~2005년 12월. 제31대 통일부 장관
- 2004년 8월~2005년 12월.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 2006년 2월~2006년 6월. 열린우리당 당의장
- 2007년 8월. 대통합 민주신당 창당
- 2007년 9월. 17대 대통령 선거 대통합 민주신당 후보
수상
저서
생애
어린 시절 유복한 생활을 보내지만 고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게 된다. 열여덟 살 때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과 사근동 달동네에 정착하게 되고 그곳에서 그의 어머니는 3명의 동생과 함께 아동복을 만들어 팔면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간다.
현재 부인 민혜경 사이에서 2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장남 정욱진은 스탠퍼드대학교 화공과 3학년으로 현재 국군 정보사령부에서 현역병으로 군 복무중이 며 차남은 정현중은 연세대학교 재학중으로 해병대에서 군복무중이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 유신반대운동을 하다 투옥되었고, 바로 강제징집을 당했다. 제대 후 문화방송에 투신하여, 기자와 뉴스앵커를 맡으면서 국민적 인기를 끌었다.
1996년 정계에 투신하여,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끄는 새정치 국민회의로 출마하여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곧이어 2000년에도 당선되면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새정치 국민회의가 새천년 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대변인과 최고위원을 지냈다.
2004년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창당주역이 되었고, 곧이어 당의장에 올랐다. 그러나 '노인 폄하 발언'으로 다 이긴 선거가 어렵게 되자, 비례대표를 사임하고 백의종군하게 된다. 이 무렵 노무현 대통령은 통일부 장관으로 불러들인다. 통일부 장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상임위원장 겸임하면서 민족문제를 다뤘다.
열린우리당으로 복귀한 후 당의장에 다시 선출되고, 2006년 7월 1일 당의장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열린우리당을 해산하고, 2007년 대통합 민주신당을 창당하였다. 대통합 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2007년 7월 3일)에 나서서 이해찬, 손학규 등을 제치고 2007년 9월에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17대 대통령 선거
주요공약
- 대입제도 폐지: 수학능력시험을 검정고시와 같이 자격시험화하고, 100% 내신으로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하도록 제도를 바꾸겠다고 밝혔다.
- 북한에 대한 경제정책, 통일정책: 가장 자신있는 분야로, 북한을 발판으로 삼아 동아시아 허브로 대한민국을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비판
- 노인 폄하 발언: 지난 17대 총선에서 "어르신들은 투표장에 나오지 말고 편히 쉬시라"라고 말하여 열린우리당의 압승을 좌절시켰다. 이 발언으로 한나라당은 탄핵역풍을 딛고, 120석 내외의 의석을 차지, 열린우리당을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
- 경선 과정에서의 조직선거: 손학규, 이해찬 예비후보가 제기하였던 조직선거의혹. 실제 오랜 정치경험과 열린우리당의 창당주역으로서의 경험, 2번의 당의장 경험 등 다양한 경험을 가진 정동영 후보는 조직선거에 능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러나 조직선거는 혼탄선거, 돈선거 등으로 흐를 문제가 있다.
- 부친의 친일행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