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18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 타결되자, 이에 대한 우려로 촛불시위가 시작되었다. 5월 2일에 중고등학생들과 인터넷 까페인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의 주도로 청계천 광장에서 촛불시위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학생들과 인터넷 회원들이 주로 참여하였다. 5월 24일이 되면서 경찰과 충돌이 시작되었고, 시위규모는 점차 확대되었다. 5월 31일에서 6월 1일에는 경찰의 예상을 깨고, 3갈래로 나눠 청와대로 진격하였다. 경찰은 간신히 행진을 막았고, 이때부터 경찰은 적극적으로 시위대를 막기 시작했다.
6월 5일부터 8일까지 72시간 연속 시위가 있었으며, 6월 10일에는 약 50만~70만에 달하는 인원이 서울에서 시위에 참가했다. 놀란 이명박 대통령은 긴급히 사과를 하였고, 추가협상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사태진화를 위해서 노력하였으나 시위는 멈출 줄 몰랐다. 또한 이 시기부터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하야, 탄핵 등의 구호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위대의 엄청난 규모에 놀란 경찰은 한 동안 시위대 공격에 소극적이었다가 시위규모가 점차 줄어가면서 적극적으로 시위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7월 말 경에는 아예 시위시도 자체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대응하였다. 한편 이 시위의 영향으로 많은 인터넷 통제가 이뤄졌으며, PD 수첩에 대한 검찰의 조사 등 방송과 언론통제도 가시화 되었다.
이 촛불시위로 체포인원 1천530명·부상자 2천500명, 구속자 32명, 수배자 30여명에 달하는 등 많은 시민들이 공권력의 남용으로 피해를 입었고, 또한 서울 도심은 근 한달 이상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로 교통혼란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