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고조 이연의 뒤를 이은 당 태종(이세민)대에 이르러 당나라는 크게 융성하였다. 당 태종 이세민은 고창국과 비단길 일대를 장악하고 돌궐을 정복하여 당나라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또한 조세제도와 토지제도, 군사제도도 정비하였다. (조용조) 이러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이뤄져 당나라 시대의 율령 체제가 완성되었다. 당 태종의 이러한 치세를 두고 정관의 치(貞觀-治)라고 부른다. 당나라는 이후 잠시 쇠퇴 하였다가 현종이 즉위하자 당나라는 다시 전성기를 누리는 데 이를 개원의 치(開元-治)라고 한다. 이 시기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경교)가 불교와 더불어 꽃을 피울 정도로 문화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현종은 안으로는 민생안정을 꾀하고 조운(漕運) 개량과 둔전(屯田) 개발 등으로 경제를 충실히 하였으며, 부병제(府兵制)의 붕괴에 대처하여 신병제를 정비하여 다시 나라를 일으켰다. 또한 밖으로는 동돌궐(東突厥), 토번(吐蕃), 거란(契丹) 등의 국경지대 방비를 튼튼히 하여, 수십 년의 태평천하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현종 재위 말기부터 귀족들의 장원토지가 증가하여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755년에는 안사의 난이 일어났는데 이 사건은 중앙 정부의 통치력을 매우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많은 농민들이 소작농이 되었다. 결국 당나라는 조세 제도는 양세법, 군사 제도는 모병제로 바꾸었다. 수 많은 반란 속에서 절도사세력이 성장하였고 중앙정부에서는 환관과 외척들이 권력다툼을 벌였다. 결국 황소의 난을 거쳐 당나라는 절도사인 주전충에게 멸망하였다.
당나라의 중앙관제인 3성 6부제는 아시아 각국에서 활용되었으며, 율령체제와 조용조 조세제도 등도 각 국의 모범이 되었다.
수나라때 실시 된 과거제도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어 주요 관리들은 과거로 뽑았다. 과거제에서는 유교에 관련된 서적에 대한 지식을 테스트했다. 그래서 유학과 문학이 크게 발달하였는데 당나라 때에는 훈고학이라는 것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로 인해 사상의 획일화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문학 역시 귀족 중심의 시가 발달하였는데 이백과 두보가 대표적인 시인이다.
종교적으로는 불교가 매우 발전하였고 현장이 지은 대당서역기라는 책은 인도와 동남 아시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나라 때는 무역이 크게 발달하였기 때문에 조로아스터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마니교 등도 전파되었다. 도교는 황실의 지원을 받았다.
아시아 각국에 영향을 미쳤으며 일본에서도 나라 시대와 헤이안 시대에 견당사(遣唐使)를 파견하여 당나라 문물을 수입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