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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27일 (일) 03:23 판

1674년 즉위한 숙종 초기에는 남인이 정권을 잡고 있었고, 서인이 야당이었다. 남인은 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전시 조직인 도체찰사부를 만들었다. 도체찰사부가 만들어지면 모든 군권은(훈련도감어영청 제외) 영의정 휘하로 일원화되어 사실상 모든 군권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이에 숙종 임금은 남인을 견제할 필요성을 느꼈다.

1680년 3월, 남인의 영수인 영의정 허적이 임금의 허락 없이 궁궐의 천막을 가져다 쓰는 사건이 벌어졌다. 숙종은 이를 빌미로 삼아 군권을 남인에게서 서인으로 옮기고, 서인을 관직에 대거 진출시켰다. 한달 뒤, 서인이 많이 등용된 사헌부사간원에서 남인들이 역모를 꾸몄다고 여론을 형성하였다. 그 내용은 왕족인 복창군·복선군·복평군허적의 서자 허견과 함께 역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숙종은 이를 계기로 남인을 대거 축출하였다.

역사적 의미

경신환국 이후 조선은 한 개의 정파가 권력을 독점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이는 붕당의 정상적인 견제, 토론 기능이 무너졌으며 오로지 정쟁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