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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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奴婢)는 동아시아의 봉건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예속되어 있던 천민 사회 계급을 가리킨다. 남의 집이나 나라에 몸이 매이어 대대로 천역에 종사하던 사람으로서 흔히 종이라고도 불렀으며, 노(奴)는 남자 종을, 비(婢)는 여자 종을 가리켰다.

유럽이나 서구의 노예와는 다르게 가족을 가질 수 있으며, 외거노비는 주인 집 밖에서 따로 살림을 내고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등, 종속적인 측면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최초로 노비가 등장하는 것은 8조 법금으로 "도둑질을 한 사람은 종으로 삼는다."라는 대목이 있다. 이후 각종 정복전쟁 과정에서 정복세력에게 강력하게 저항했던 부족민들은 노비로 삼는 일이 많았다.

삼국시대 이후부터는 정복전쟁으로 노비가 되는 것보다는 귀족들의 고리대 등으로 인해서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인신이 구속되어 노비로 전락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노비의 신분이 과거에는 평민이었기 때문에 노비들은 고려 후기 '만적의 난'과 같이 항쟁을 펼치기도 하였다. 노비는 이 당시 노비는 사노비와 관노비가 있었는데, 관노비는 관청에서 일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조선시대에서도 노비는 경제적인 이유로 신분이 떨어지거나 반역자의 후손일 경우 관노비로 삼은 경우가 다수였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종이라고 할 지라도 종전의 노비보다는 신분이 높았으며, 평민이 양반의 집에서 일을 해주면서 종과 같이 일할 때도 있었다. 갑오개혁(1894년)으로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노비는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20세기 중반까지 지주나 유력자의 집에서 일을 해주는 종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