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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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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31대 마지막 임금. 재위([[641년]]~[[660년]])
어려서부터 효성이 깊고, 뛰어난 재주를 갖춰 '해동증자'로 불렸다. 즉위 이후 선왕인 [[백제 무왕|무왕]]대 일궈놓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신라]]를 공격하였다. [[642년]]에 의자왕이 벌인 대공세로 [[신라]]는 [[한강]] 인근 40여 성을 잃었으며, 대 [[백제]] 전략 요충지인 [[대야성]]을 잃었다. 이러한 군사적 성과는 역으로 [[신라]]와 [[당나라]]의 군사동맹으로 이어지게도 하였다.
끊임없이 [[신라]]를 공격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왕권강화도 꾸준히 추진되었다. 귀족들을 축출하고, [[657년]]에는 왕자 41명을 [[좌평]]에 앉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귀족들이 왕에게 등을 돌리게 하였으며,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로 쳐들어 올 때, 귀족들의 비협조로 [[백제]]가 멸망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한편 의자왕의 대명사였던 삼천 궁녀 이야기는 의자왕을 조롱하고, [[백제]]의 멸망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과장된 이야기로 추정된다. 또한 [[656년]] 이후 의자왕의 왕권이 약화되었으며, 그로 인해서 [[나당 연합]]군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설도 있다. 이는 의자왕의 오른팔인 [[성충]]과 [[흥수]]가 제거된 것을 살펴보아 짐작 가능하다.
[[660년]] 7월.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이후, [[당나라]]로 끌려갔다가 곧 죽게 된다.
[[분류:임금]]
[[분류:백제]]
*[[백제]] 31대 마지막 임금. 재위([[641년]]~[[660년]])
어려서부터 효성이 깊고, 뛰어난 재주를 갖춰 '해동증자'로 불렸다. 즉위 이후 선왕인 [[백제 무왕|무왕]]대 일궈놓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신라]]를 공격하였다. [[642년]]에 의자왕이 벌인 대공세로 [[신라]]는 [[한강]] 인근 40여 성을 잃었으며, 대 [[백제]] 전략 요충지인 [[대야성]]을 잃었다. 이러한 군사적 성과는 역으로 [[신라]]와 [[당나라]]의 군사동맹으로 이어지게도 하였다.
끊임없이 [[신라]]를 공격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왕권강화도 꾸준히 추진되었다. 귀족들을 축출하고, [[657년]]에는 왕자 41명을 [[좌평]]에 앉히는 것이 바로 그러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귀족들이 왕에게 등을 돌리게 하였으며,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로 쳐들어 올 때, 귀족들의 비협조로 [[백제]]가 멸망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한편 의자왕의 대명사였던 삼천 궁녀 이야기는 의자왕을 조롱하고, [[백제]]의 멸망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과장된 이야기로 추정된다. 또한 [[656년]] 이후 의자왕의 왕권이 약화되었으며, 그로 인해서 [[나당 연합]]군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설도 있다. 이는 의자왕의 오른팔인 [[성충]]과 [[흥수]]가 제거된 것을 살펴보아 짐작 가능하다.
[[660년]] 7월.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이후, [[당나라]]로 끌려갔다가 곧 죽게 된다.
[[분류:임금]]
[[분류:백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