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대한민국의 정치인,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신당'후보로 출마하였다.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통합민주당의 후보로 출마하였다.
학력
경력
- 1979년 사법고시 합격. 이후 1983년까지 판사로 활동.
- 1988년 13대 국회의원.
- 1989년 통일민주당 대변인.
- 1992년 14대 국회의원.
- 1993년 노동부 장관.
- 1995년 6월~ 초대 민선 경기도지사.
- 1997년 국민신당 15대 대통령 선거 후보.
- 2000년 16대 국회의원, 새천년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
- 2000년 4월 새천년 민주당 상임고문.
- 2000년 8월 새천년 민주당 최고위원.
- 2002년 12월 자유민주연합 총재 권한대행.
- 2004년 17대 국회의원.
- 2006년 1월 국민중심당 최고위원.
- 2007년 7월 통합민주당 상임고문.
- 2007년 9월 통합민주당 17대 대통령 선거 후보.
수상
저서
생애
1948년 12월 11일 충청남도 논산시 출생이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판사가 된 그는 다소 소신있는 판결을 내렸다. 1988년 정계에 투신한 이후에는 39세의 젊은 나이로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뒤이어 1988년 5.18 광주청문회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당시 최연소 노동부 장관이 되어 산업현장을 뛰어다녔다. 그의 말로는 다소 진보적인 노동정책을 폈다고 하지만 노동계의 평은 이와 다르다.
1995년에 실시된 초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이후, 그는 1997년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였다. 그러나 1997년 실시된 신한국당 경선에서 패배하자 이에 불복하여 독자적으로 '국민신당'이라는 당을 창당하고 15대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였다. 대통령 선거에서 500여만 표를 얻었으나, 오히려 '영남표를 분열시켜 김대중 정부의 탄생을 도왔다'라는 '배신자'의 딱지를 안고 말았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이인제는 국민신당을 새천년 민주당에 흡수·통합시켰다. 새천년 민주당에서 최고위원과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기반을 다졌지만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새천년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하여 대선 2회 도전은 실패하였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는 다시 당을 옮겨 김종필 전 총재의 자유민주연합에 동참하였다. 자유민주연합에서 총재권한 대행까지 올랐으나, 다시 국민중심당으로 옮겼고, 또 다시 2007년 여름에 만들어진 '민주당(통합민주당)'에 몸을 옮겨, 총합 무려 10번이나 당적을 변경한 '신화적'인 기록을 남겼다.
17대 대통령 선거
민주당(통합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인제는 김민석 예비후보, 신국환 예비후보, 장상 예비후보를 제치고 통합민주당 17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직접 선거에 나서기 보다는 중도세력의 통합으로 정치적 기반을 쌓는 것에 더 몰두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주요공약
- 경제성장률 7%. 매년 6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
- 지방분권을 단행.
- 지식경제 대특구 건설.
- 시장친화적 부동산 정책.
- 농가부채 탕감, 기업하기 좋은 나라 등.
비판
- 15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영남표 분열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 무려 10번 넘게 당적을 옮기는 전형적인 철새 정치인이다.
- 겉으로는 중도세력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보수세력에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