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2009년 옥쇄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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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400여명의 노조원들이 마지막 보루였던 도장2공장 점거농성을 푼 것은 2009년 8월 6일 오후 2시50분. 지난 5월22일 ‘옥쇄파업’에 들어간지 77일 만이다.

회사 측이 4월8일 직원 2646명을 구조조정하는 내용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발표하자 노조는 4월13일과 14일 투표를 통해 쟁의행위안을 가결시켰다. 이어 5월21일 평택공장에서 긴급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고 옥쇄파업에 들어갔다.

사측은 5월31일 노조원들을 퇴거시키기 위해 평택공장에 대해 직장폐쇄조치를 단행한 데 이어 6월8일 정리해고 대상자 976명에 대해 해고를 단행했다.

6월26일 사측이 제시한 구조조정 수정안을 노조가 거부한 뒤 사측 직원들이 공장 진입을 시도하면서 충돌이 시작됐다. 노조원들은 도장작업용 시너와 페인트 등 다량의 인화물질이 보관된 도장공장으로 들어가 옥쇄파업을 시작하면서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법원이 지난달 두 차례 평택공장 퇴거명령 강제집행을 시도했지만 헛수고였다.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은 지난달 20일 노조원 강제해산 방침을 발표했고, 임직원 1500여명은 본관과 연구동으로 출근을 강행했다. 회사 측은 물과 음식물 반입도 금지시켰다. 지난달 30일 노사간 ‘컨테이너 협상’이 시작됐지만 ‘무박4일’ 만에 결렬됐다.

회사 측은 협상 결렬 후 단전조치를 취하며 노조원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경찰은 4일과 5일 경찰 특공대까지 동원, 이틀간 진압작전을 펴 도장2공장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을 장악했다. 협력업체 모임인 쌍용차협동회는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조기파산을 신청했고, 조 청장은 “6일까지 자진해서 나오는 노조원에게 최대한 선처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강제 진압 임박설이 돌고 점거 노조원들 사이에 동요와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농성 이탈자가 급속히 늘어나자 선택의 기로에 선 노조는 결국 사측에 백기투항했다.

결과

  • 구속: 38명
  • 피해:
  • 쌍용자동차 회생:
  • 한국 노동 운동에 미친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