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러토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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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ttle of Saratoga". 미국 독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전투. 1777년에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은 영국군을 몰아붙일 수 있게 되었다.

1777년, 윌리엄 하우(William Howe)장군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고, 캐나다에서 진격해 내려오는 존 버고인(John Burgoyne)장군과 합류할 계획을 짰다. 그러나 윌리엄 하우 장군은 필라델피아를 공격하였고, 존 버고인 군대는 혼자서 남하해야 했다.

존 버고인은 `배리 세인트 레저 대령`을 세인트로렌스 강을 따라 온타리오 호수로 향하도록 하였다. 자신은 `허드슨 계곡` 상류로 곧바로 진격해 `타이콘데로가` 요새를 점령했다. 그러나 곧 두 차례 큰 패배를 경험해야 했다. 8월 6일, 뉴욕의 `오리스카니`에서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은 인디언 지원군 및 토리파를 격퇴하였다. 이로 인해서 존 버고인 군대는 고립되었다. 8월 16일 뉴잉글랜드 민병대가 버몬트의 `베닝턴`에서 존 버고인의 분견대를 격파한 것이다. 이 분견대는 존 버고인 군대의 보급과 지원을 요청할 부대였다.

존 버고인은 몇 차례 큰 희생을 치른 후 `새러토가`(Saratoga)로 철군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2만 대군을 이끄는 호레이쇼 게이츠(Horatio Gates)장군이 포위하였다. 그리고 10월 17일 존 버고인은 항복하였고, 식민지인들과 `전쟁 중에는 다시는 아메리카 대륙에 오지 않는다`라는 맹세를 하고 영국 진영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존 버고인 군대는 전투 전에 약 8000명의 군대였으나, 마지막에는 5000명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이로 인해서 영국군의 북부세력은 큰 타격을 받았고, 프랑스는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의 저력에 놀라워했다. 이 전투의 가장 큰 성과는 프랑스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아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