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학생 항일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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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9년 광주에서 일어나 전국적으로 확산된 항일 학생운동.

1929년 10월 31일 일본인 학생들이 광주지역 여학생들을 희롱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경찰은 일본인 학생들을 보호하고, 한국인 학생들을 차별하자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집단으로 항의하였다. 이후 학생들의 충돌은 그치질 않았으며, 11월 3일(음력 10월 3일. 개천절)에는 학생들이 기미가요를 부르는 것에 반대하여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광주 학생들의 항일정신을 본 광주청년동맹은 광주지역 학생들을 조직화하여 학생들이 가두시위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자 일제는 60명의 학생들을 구속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11월 12일에는 광주지역 여러 학교에 유인물이 뿌려졌으며, 많은 학생들이 침묵시위와 동맹휴학으로 항일의식을 나타내었다. 일제는 250명 가까운 학생들을 검거하였다. 또한 학교에서는 시위에 가담한 학생들을 무겁게 처벌하면서 항일의식에 오히려 부채질을 하였다. 이에 신간회에서는 이를 기회로 기존 비밀독서회 형식으로 흩어져 있던 학생저항세력을 결집시켜 12월 3일에는 각급 학교에 격문이 뿌려졌다. 일제는 학생운동가들을 체포하였으나 예정대로 12월 9일 각 학교에서 수천 명의 학생시위가 일어났다. 일제는 이날만 1200명의 학생들을 검거하여 강경하게 시위를 탄압하였다. 이후 다음해(1930년) 3월까지 지방으로 학생시위는 번져나가 총 323학교가 이 운동에 참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