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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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리학(宋明理學)의 지나친 형이상학적 지향성(추상주의, 관념주의)에 반대하여 생겨난 청나라 때의 대표적 학풍을 말한다.

고증학이 나타나게 된 원인은 송명(송나라, 명나라 宋明)의 성리학(性理學)·양명학(陽明學)이 리기(理氣)·심성(心性)에 대한 논의에만 치우쳐 지나친 추상주의로 흘러 현실 문제를 도외시하는 폐단을 드러냈다.

이런 송명의 학풍을 배격하면서 경세(세상을 다스린다. 經世)를 위한 실학(實學)을 표방하고 사적(史的) 실증(實證)과 박학(본래의 뜻을 제대로 해석한다. 博學)을 통한 실천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일었다.

하지만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사상과 이민족을 천대시하는 사상은 정치적 억압으로 인해 퇴조하기 시작하였고, 보다 객관적인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측면만이 공식적으로 용인되어 고증학으로 개화되었다.

그러나 고증학은 지나치게 경전에 대한 자의적(字義的) 해석의 일면에 치중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경전을 지은 성현의 본뜻에서 일탈(逸脫)되어 버린 문제점도 안고 있다. 또한 성리학·양명학의 폐단을 발전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이들 학문을 단순히 배척·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던 것도 고증학이 가지는 문제점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