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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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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8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샘물교회]] 소속 신도 23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 및 봉사활동을 펼치다가 [[탈레반]] 계열의 무장단체에 피랍된 사건. ''아프간 사태, 아프가니스탄 피랍, [[샘물교회]] 피랍사건 등으로 불린다.''
===사건의 원인===
[[그림:샘물교회 출국사진.jpg|frame|샘물교회 선교지원팀이 출국에 앞서 [[아프가니스탄]] 여행 경고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선교활동''': 한국[[개신교]]는 공격적인 선교활동으로 유명하다. 샘물교회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도 [[2007년]]까지 3명의 선교사를 포함하여 7명의 선교단이 고정적으로 파견된 상태이다. 이 선교단의 지원을 위하여 '선교지원팀'이 꾸려지고 [[2007년]] 7월 [[아프가니스탄]]으로 단기선교활동을 펴기 위하여 선교지원팀이 출발한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미 한국인들의 선교활동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가즈니 주지사도 이에 대하여 우려를 표명하였다. [[2006년]] 8월에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한국[[개신교]] 계열이 대규모 기독교 행사를 펼치려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한국정부의 만류에 의하여 취소된 적이 있다. 분쟁지역과 오지에 공격적으로 선교와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한국[[개신교]]에서는 교회세력을 알리기 위한 좋은 명분이었다. 이런 공격적인 선교활동은 많은 분쟁의 여지를 안고 있었다.
*'''불안한 [[아프가니스탄]]의 정세''':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필두로 하여 [[아프가니스탄]]에는 친미정권이 들어섰다. [[미국]]의 대규모 소탕작전에 크게 패퇴한 [[탈레반]] 세력은 [[2005년]] 이후 중남부지역과 파키스탄 일대에서 힘을 다시 회복하여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미국]]을 위시한 다국적군과 대치하고 있다. [[탈레반]]은 [[2007년]]을 기점으로 국제사회의 인정과 실질적인 이익(잡혀간 [[탈레반]] 전사의 석방, 활동자금 마련)을 위하여 인질피랍을 주요방법으로 삼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인 선교팀은 눈에 들어오는 확실한 타켓이었다.
===사건의 경과===
[[탈레반]]은 피랍된 23명 중 심성민과 배형규 목사를 살해했으나, [[대한민국]]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 결과 다른 인질 21명은 8월 31일까지 단계적으로 모두 풀려나 피랍사태는 발생 42일만에 종료되었으며, 9월 2일 생존한 피랍자 19명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회적 반향===
사회적으로 기독교의 무분별한 선교활동과 이분법적인 주입식 종교강요가 큰 화두로 떠올랐다. 다수의 비기독교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공감하였으나 여전히 다수의 기독교 신자들은 '선교는 절대 사명'이라고 생각하며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나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훗날 우리 사회가 기독교-비기독교로 분열될 가능성이 큰 만큼 사회분열을 막기 위한 여러 종교적 대책들이 나와야 한다. 또한 우리 정부와 전문가 집단에서 이슬람과 아랍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과 정보가 없다는 점에서 대외관계 및 기업진출을 위해서 이슬람과 아랍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분류:시사]]
[[분류:종교]]
[[분류: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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