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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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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몽고]]지역에 위치한 북방유목민족. 서기 4세기~[[1219년]]
초기에는 전형적인 부족연맹체제로 시작하였다. 8부족이 있다고 전해진다. [[고구려]]와의 충돌이 있었지만 [[광개토 대왕]]의 공격 이후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이후 [[돌궐]]에 복속되었다. [[628년]] [[돌궐]]에서 자립하여 [[당나라]]에 복속하였으며, [[696년]] [[당나라]]로부터 독립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이진충의 난]]), 실패하였다. 이후 [[당나라]]가 힘이 약해지자 자립하여 [[907년]]에는 [[야율아보기]]가 칸의 자리에 오른다. [[야율아보기]]는 종래의 느슨한 부족연맹체제를 붕괴시키고 전제왕권을 구축하였다. [[야율아보기]]는 [[916년]] 천황제로 즉위하고, [[926년]] [[발해]]를 멸망시켜 북방의 패자로 군림하였다.

[[936년]] [[석경당]]의 요청에 따라 [[후진]](後晉)을 건국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이 대가로 [[연운 16주]]를 얻게 되었다. 거란은 한족을 지배하기 위하여 나라 이름을 '대요(요나라)'라고 중국식 이름으로 바꿨다. 이후 [[947년]]에는 중국 내륙 깊숙히 쳐들어가 [[개봉]]을 점령하였지만, 한족 통치의 어려움을 느끼고 후퇴하였다. 요나라는 남쪽 중국영토를 지배하기 위해서 '[[남면관]]'을 설치하고 [[당나라]]의 군현제를 모방하였으며, 북쪽영토는 '[[북면관]]'이라 하여 자신들의 고유통치방식을 사용하였다. 이와 같은 이원적 통치방법은 훗날 많은 유목민 정복왕조에게 활용되었다.

요나라는 [[요 성종]] 시기에 국력이 최전성기에 달했으며, [[송나라]]에 유리한 조건으로 화친을 맺었다. 이를 [[전연지맹]](澶淵之盟)이라고 한다. [[요 성종]]은 또한 [[고려]]를 3차례 침입하였으나 실패하였다.([[거란 침공]]) 이후 황위를 둘러싼 갈등으로 나라가 어수선 해졌으며, 만주지역의 [[여진족]]에게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후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와 [[송나라]]의 협공에 의해 나라가 흔들렸으며, 최종적으로 [[1125년]]에 [[요나라]]는 [[금나라]]의 공격에 멸망하였다.

[[야율대석]](耶律大石)은 남은 세력을 이끌고 서쪽으로 이동해 [[1132년]]에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서요]](西遼)를 건국하였다. 흑거란(黑契丹), 카라키타이(Karakitai)라고도 불리는 [[서요]](西遼)는 3대에 걸쳐 존속했지만, [[1211년]] [[칭기즈칸]]에 밀려난 [[나이만]](Naiman) 부족의 쿠츨루크(Kuchlug)에게 점령되었다가, [[1218년]] [[몽고]]에 복속되어 멸망하였다. [[1219년]] 남아 있던 마지막 세력은 만주지역에서 [[고려]]와 [[몽고]]의 연합공격에 의해서 멸망하였다.

[[분류: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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