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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

3,388 바이트 추가됨, 2008년 7월 26일 (토)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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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4군. 한사군.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고조선]]의 옛 땅에 세운 간접지배기관. [[낙랑군]], [[현도군]], [[임둔군]], [[진번군]]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후에 설치된 [[대방군]]도 한사군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여러 학설==
종래 식민사학자인 [[이병도]]는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다고 하였다. 이 이론은 아직도 가장 강력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새로운 학설들이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서 논쟁을 붙이고 있다. 재야사학계에서는 현재 [[북경]] 인근지역에서부터 [[요서]]지역까지를 그 위치로 비정하고 있다. 본 역사사전은 다음과 같이 한사군의 위치를 추측하고 있다.

[[그림:한사군의-위치1.gif]]

==한사군의 성격==
과거 [[이병도]] 이하 보수적인 역사학계에서는 한사군이 직접적인 식민통치기구로 기능하였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사군은 직접적인 식민통치기구이기 보다는 간접적으로 동방 여러 세력을 조정·분열시키기 위한 정치적 교두보 정도로 이해하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본 역사사전도 그런 관점에서 한사군의 성격을 이해하고 있다. 또한 일부 학자들은 한사군은 초기에는 동방의 간접통치기구였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동방의 역사로 편입되었으며, 이를 우리민족의 역사로 다뤄야 한다는 적극적인 시각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낙랑군]]의 문화나 유물은 중국의 통치기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독특하며, 동방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증거들이 많다.

그리고 한사군은 [[한나라]]와 [[중국]] 문물이 동방으로 들어오는 교통로 역할을 하였으며,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한사군과 인접한 지역에서는 한사군에서 흘러들어오는 신문물, 한사군과의 적극적인 투쟁으로 인해서 빠른 속도로 고대국가를 성립할 수 있었다.(물론 [[고조선]]의 역사적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한사군의 역사==
[[한나라]]는 한사군을 직접 다스리기로 결정하고, 태수와 현령·관리를 파견하여 다스렸다. 그러나 구 [[고조선]] 세력과 [[고조선]]의 영향력하에 있던 세력이 반발하면서 한사군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특히 [[고구려족]]의 공격으로 [[기원전 82년]]에는 [[진번군]]과 [[임둔군]]이 폐군되었고, [[기원전 75년]]에는 역시 [[고구려]]족의 공격으로 [[현도군]]이 서쪽으로 후퇴하였다. 유일하게 [[낙랑군]]만이 남아서 동방의 여러 세력들을 견제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후 [[한나라]]가 쇠퇴하면서 한사군에 대한 지원이 약해졌으며, 동시에 한사군도 힘을 잃어갔다. [[대방군]]이 설치되면서 한사군은 잠시 그 영향을 확대하였으나,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서기 [[313년]], [[고구려]] [[미천왕]]의 공격으로 [[낙랑군]]과 [[대방군]]이 [[고구려]] 영토에 포함되면서 한사군은 역사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분류:고조선]]
[[분류:한나라]]
[[분류:한국사]]
[[분류: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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