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 아프리카 대륙 북동지역에 위치한 유서깊은 나라.
개요
- 체제: 대통령 중심제형 공화국
- 수도: 카이로
- 언어: 아랍어
- 면적: 한반도의 5배 가량
- 인구: 약 7900만명(2007년)
- GDP: 약 3200억 달러(2006년. 세계 32위 내외)
- 1인당 소득: 약 4320달러(2006년. 세계 112위 내외)
- 통화: 영국의 파운드화(영국에 종속된 경제구조)
- 지리: 중앙은 나일강과 인근 평야지대, 좌우로는 사막지대.
역사
이집트의 역사를 정리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 문명은 따로 정리한다. (→이집트 문명)
고대
이집트는 약 31개의 왕조로 고대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집트 문명이 건립된 것은 기원전 4500년~4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시기에 문명을 이룩하고, 국가를 건설하였다. 중간에 앗시리아의 침입과 신바빌로니아의 침입, 페르시아 제국의 침입이 있었다. 기원전 332년에는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대왕)의 침략으로 마케도니아의 영역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가 분열되면서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지배하는 독립국이 되었다.
중세
기원전 30년에 아우구스투스가 이집트를 점령했으며, 이후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그러다 642년에는 이슬람 세력이 동로마 제국을 물리치고 이집트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이집트는 사실상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서기 969년에는 파티마 왕조의 중심국이 되었으며, 1250년에 맘루크들이 이집트를 지배하게 되었다. 1517년에 이집트는 오스만 투르크에 점령되어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근대
1798년에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가 이집트를 공격하고 함락하면서 이집트에서 오스만 투르크의 힘은 급격히 약해진다. 프랑스군이 떠난 뒤, 무하마드 알리가 사실상 이집트를 지배하고, 오스만 투르크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하마드 알리와 그 후손들은 이집트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고, 수에즈 운하의 건설로 막대한 빚만 지게 되었다. 이는 영국에게 침략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1876년에 영국은 아라비 파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를 보호령으로 하였으며, 사실상 이집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이집트를 완전한 식민지로 만드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1922년에 이집트 왕국으로 (명목상)독립을 허용했다. 그러나 수에즈 운하 경영권과 군사권은 여전히 영국에게 있었다. 이후 이들 권한들은 순차적으로 이집트에게 돌아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에 가담하였으며, 1953년에 가말 아브델 나세르가 쿠데타로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당시 나세르는 사회주의 정책들을 시행하였다. 나세르의 후계자인 안와르 엘 사다트는 1973년부터 이집트를 다스렸으며, 1981년에 암살당했다. 그의 뒤를 이어 호스니 무바라크가 1981년부터 현재까지 대통령직에 머물러 있다.
이스라엘과의 충돌
이집트는 1948년부터 이스라엘과 내내 충돌하였다. 이집트와 아랍세력은 1948년에 이스라엘 건국을 막고, 팔레스타인의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서 전쟁을 벌였다. 초기에는 아랍 연합군이 승리하는 것 같다가 곧 이스라엘에 패배하였다. 1956년에는 수에즈 운하를 점령한 이집트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공격하여 시나이 반도와 수에즈 운하 동쪽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후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이스라엘군은 철수하였다. 그리고 1967년과 1973년에도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전면전을 벌였으나 모두 이집트가 패배하였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충돌은 1979년 3월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불안정한 상태로 종식되었다. 이 협정과 추가 협의로 인해서 이집트는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하고, 이스라엘은 점령한 시나이 반도를 1982년에 되돌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