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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회의
,→2차 대륙회의
*[[미국]]이 건설되기 전 북아메리카 식민지 및 신생 독립 공화국들의 의결체.
[[영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들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영국 중앙은]]행의 화폐를 강요하고, [[1774년]]에는 왕실이 임명한 총독이 [[버지니아]] 식민지 의회를 해산하자 의회 잔류파들이 대륙 회의를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1774년]] 9월, 대륙 회의가 개최되었다.
===1차 대륙회의===
[[1774년]] 9월, [[조지아]] 식민지를 제외한 13개 식민지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되었다. 여기에서 5가지 사항이 결정되었다.
#[[영국]] 정부 주도의 식민지 통합 계획을 거부하였다.
#불만 사항을 비교적 온건하게 표현한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특히 영국 임금에게는 `가장 자비로운 군주`라 칭하였다. 또한 [[1763년]] 이후 제정된 강압적인 법률을 모조리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보스턴]]에 주둔한 영국군이 공격할 경우를 대비하여 여러 조치들을 제의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영국]]과의 모든 교역을 중단하고, 영국 상품의 불매운동을 제시하였다. 또한 이를 실행할 `대륙 협회`를 조직하였다.
#[[1775년]] 봄에 다시 모이기로 약속했다.
이런 대륙회의의 요구 사항을 [[영국]] 의회는 논란을 거듭한 끝에 `회유 사항`을 승인하였다. 이는 영국 의회가 요청하면 식민지가 스스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서 영국은 식민지 내 다수의 온건파와 소수의 급진파가 분열되도록 하려 했다.
===2차 대륙회의===
[[렉싱턴 전투]]([[1775년]] 4월 19일) 이후 3주후, 그때까지 대표를 파견하지 않았던 [[조지아]]를 제외한 모든 식민지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필라델피아]]에서 2차 대륙회의가 개최되었다. 대표들은 여기서 전쟁 지원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목적에 대해서는 합의를 보지 못했다. 한 쪽에는 [[존 애덤스]]와 그의 사촌 [[새뮤얼 애덤스]], [[버지니아]]의 [[리처드 헨리 리]](Richard Henry Lee) 등이 독립을 주장하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펜실베니아]]의 [[존 디킨스]](John Dickinson) 같이 [[영국]]과 화해하기를 바라는 온건파가 있었다.
한편 대륙 회의에서는 전쟁 비용을 대기 위해서 `대륙 통용 지폐`를 발행하였으나, 엄청난 인플레이션만 불러왔고, 할 수 없이 다른 나라로부터 돈을 빌려왔다. 또한 [[1775년]] 6월에는 `대륙군`을 창설하여, [[조지 워싱턴]]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후 활동===
[[1776년]]이 되면 독립을 주장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대륙 회의도 여름에 공식적인 `[[독립 선언서]]`를 채택하였다. [[1776년]] 7월 4일이다. [[독립 선언서]]가 채택되자, 각각의 식민지는 작은 공화국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781년]]에 대부분의 공화국들이 헌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대륙 회의는 [[1777년]] 11월, 통합을 위한 `[[연합 헌장]]`을 채택하였다.
[[분류:미국]]
[[분류:기관]]
[[영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들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영국 중앙은]]행의 화폐를 강요하고, [[1774년]]에는 왕실이 임명한 총독이 [[버지니아]] 식민지 의회를 해산하자 의회 잔류파들이 대륙 회의를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1774년]] 9월, 대륙 회의가 개최되었다.
===1차 대륙회의===
[[1774년]] 9월, [[조지아]] 식민지를 제외한 13개 식민지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되었다. 여기에서 5가지 사항이 결정되었다.
#[[영국]] 정부 주도의 식민지 통합 계획을 거부하였다.
#불만 사항을 비교적 온건하게 표현한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특히 영국 임금에게는 `가장 자비로운 군주`라 칭하였다. 또한 [[1763년]] 이후 제정된 강압적인 법률을 모조리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보스턴]]에 주둔한 영국군이 공격할 경우를 대비하여 여러 조치들을 제의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영국]]과의 모든 교역을 중단하고, 영국 상품의 불매운동을 제시하였다. 또한 이를 실행할 `대륙 협회`를 조직하였다.
#[[1775년]] 봄에 다시 모이기로 약속했다.
이런 대륙회의의 요구 사항을 [[영국]] 의회는 논란을 거듭한 끝에 `회유 사항`을 승인하였다. 이는 영국 의회가 요청하면 식민지가 스스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서 영국은 식민지 내 다수의 온건파와 소수의 급진파가 분열되도록 하려 했다.
===2차 대륙회의===
[[렉싱턴 전투]]([[1775년]] 4월 19일) 이후 3주후, 그때까지 대표를 파견하지 않았던 [[조지아]]를 제외한 모든 식민지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필라델피아]]에서 2차 대륙회의가 개최되었다. 대표들은 여기서 전쟁 지원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목적에 대해서는 합의를 보지 못했다. 한 쪽에는 [[존 애덤스]]와 그의 사촌 [[새뮤얼 애덤스]], [[버지니아]]의 [[리처드 헨리 리]](Richard Henry Lee) 등이 독립을 주장하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펜실베니아]]의 [[존 디킨스]](John Dickinson) 같이 [[영국]]과 화해하기를 바라는 온건파가 있었다.
한편 대륙 회의에서는 전쟁 비용을 대기 위해서 `대륙 통용 지폐`를 발행하였으나, 엄청난 인플레이션만 불러왔고, 할 수 없이 다른 나라로부터 돈을 빌려왔다. 또한 [[1775년]] 6월에는 `대륙군`을 창설하여, [[조지 워싱턴]]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후 활동===
[[1776년]]이 되면 독립을 주장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대륙 회의도 여름에 공식적인 `[[독립 선언서]]`를 채택하였다. [[1776년]] 7월 4일이다. [[독립 선언서]]가 채택되자, 각각의 식민지는 작은 공화국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781년]]에 대부분의 공화국들이 헌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대륙 회의는 [[1777년]] 11월, 통합을 위한 `[[연합 헌장]]`을 채택하였다.
[[분류:미국]]
[[분류: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