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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29대 임금. 재위([[654년]]~[[661년]]), 생몰연대[[(603년]]~[[661년]])
[[진지왕]]의 손자이며, [[김용춘]]의 아들이다. 부인은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이다. 이는 [[김유신]]을 중심으로 하는 [[가야]]계 진골귀족들과 연합한 것으로 사료된다. [[642년]], [[백제]]의 대공세에 밀려 [[대야성]]이 함락되고 자신의 사위인 [[김품석]]과 딸이 죽자 그는 [[신라]] 단독으로는 [[백제]]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외교전략에 나서게 된다. 이때 [[김유신]]과 평생의 동지로 가겠다는 맹약을 하면서 두 세력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진다. [[고구려]]를 찾아간 김춘추는 [[백제]] 공격을 요청하지만 실패하고, 도리어 죽음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간신히 탈출한 그는 [[일본]]과의 교섭도 실패하고, [[당나라]]로 떠나게 된다. 그리하여 [[648년]] [[당나라]]와의 동맹을 이끌어낸다.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신흥귀족세력으로 [[선덕여왕]]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러나 [[647년]] 구귀족세력인 [[비담·염종의 난]]이 일어나자, 그는 [[김유신]]을 시켜 이 반란을 진압하도록 하고, 대대적인 구귀족세력 숙청을 단행하여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647년]]에 [[선덕여왕]]이 죽자 구귀족세력과 타협을 통해 [[진덕여왕]]을 즉위시키고, 구귀족세력의 대표인 [[알천]]을 [[상대등]]에 임명한다. [[654년]] [[진덕여왕]]이 죽자, 그는 [[알천]]과 구귀족세력과의 충돌이 빚어지게 된다. 이때 [[김유신]]은 무력을 동원하여 그를 즉위시켰다. 이가 바로 태종 무열왕이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내정개혁을 단행하여 [[651년]]에는 [[집사부]]를 만들어 왕권의 기반조직이 되게 하였다. 왕위에 오른 이후 자신의 친족을 요직에 세우고, [[김유신]]을 지원하는 등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또한 [[당나라]]의 정책을 받드는 "한화정책"을 통해서 왕권의 안정화를 꾀했다. 그리고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 멸망시키도록 하였다. 그의 외교전략이 성공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외교전략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661년]]에 죽었다. 시호는 무열왕, 묘호는 태종이다.
[[분류:임금]]
[[분류:신라]]
*[[신라]]의 29대 임금. 재위([[654년]]~[[661년]]), 생몰연대[[(603년]]~[[661년]])
[[진지왕]]의 손자이며, [[김용춘]]의 아들이다. 부인은 [[김유신]]의 누이동생 "문희"이다. 이는 [[김유신]]을 중심으로 하는 [[가야]]계 진골귀족들과 연합한 것으로 사료된다. [[642년]], [[백제]]의 대공세에 밀려 [[대야성]]이 함락되고 자신의 사위인 [[김품석]]과 딸이 죽자 그는 [[신라]] 단독으로는 [[백제]]의 공세를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외교전략에 나서게 된다. 이때 [[김유신]]과 평생의 동지로 가겠다는 맹약을 하면서 두 세력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진다. [[고구려]]를 찾아간 김춘추는 [[백제]] 공격을 요청하지만 실패하고, 도리어 죽음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간신히 탈출한 그는 [[일본]]과의 교섭도 실패하고, [[당나라]]로 떠나게 된다. 그리하여 [[648년]] [[당나라]]와의 동맹을 이끌어낸다.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신흥귀족세력으로 [[선덕여왕]]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러나 [[647년]] 구귀족세력인 [[비담·염종의 난]]이 일어나자, 그는 [[김유신]]을 시켜 이 반란을 진압하도록 하고, 대대적인 구귀족세력 숙청을 단행하여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647년]]에 [[선덕여왕]]이 죽자 구귀족세력과 타협을 통해 [[진덕여왕]]을 즉위시키고, 구귀족세력의 대표인 [[알천]]을 [[상대등]]에 임명한다. [[654년]] [[진덕여왕]]이 죽자, 그는 [[알천]]과 구귀족세력과의 충돌이 빚어지게 된다. 이때 [[김유신]]은 무력을 동원하여 그를 즉위시켰다. 이가 바로 태종 무열왕이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내정개혁을 단행하여 [[651년]]에는 [[집사부]]를 만들어 왕권의 기반조직이 되게 하였다. 왕위에 오른 이후 자신의 친족을 요직에 세우고, [[김유신]]을 지원하는 등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또한 [[당나라]]의 정책을 받드는 "한화정책"을 통해서 왕권의 안정화를 꾀했다. 그리고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 멸망시키도록 하였다. 그의 외교전략이 성공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외교전략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661년]]에 죽었다. 시호는 무열왕, 묘호는 태종이다.
[[분류:임금]]
[[분류: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