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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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의 '가례(家禮)'에 의해서 집안에 조상의 위패를 모시던 제도. 조선시대 들어와서 사대부들에 대하여 이것의 시행을 강요하였다. 고려시대 정몽주가 먼저 시행을 요청하였으나 당시 불교 세력이 막강하여 쉽사리 실천되지 않았다. 조선초기에는 이를 시행하지 않는 사대부는 문책을 당하였고, 조선 선조 이후로는 사대부 집안은 대부분 시행하게 되었다.

사당의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은 가묘를 관리하게 되는데,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분향과 절을 하고, 출입할 때는 사당의 위패에 반드시 고해야(조상께 알린다는 것)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