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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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과 서돌궐을 정벌하여, 높은 작위를 받았다. 660년에는 돌궐왕을 사로잡아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소정방은 660년 나당 연합군의 총 사령관으로서 13만 당나라 대군을 이끌고 백제를 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라와의 여러 마찰이 있었다. 그는 이미 백제 말고도 신라의 공격까지 계산에 두고 있었다. 660년 7월, 백제를 멸망시키고 의자왕을 비롯한 백제 포로들을 데리고 당나라로 귀환하였다. 이때, 좌효위대장군과 형국공이라는 높은 지위를 받았다.

한편 귀환한 소정방에게 당 고종 황제는 "왜 신라는 공격하지 않았는가?"라고 묻자, 소정방은 "신라의 임금은 백성들을 사랑하고, 단결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치기가 어려웠습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따라서 소정방은 고구려·백제·신라 모두를 공격하기 위한 총 사령관인 셈이다.

661년에는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옛 백제 땅으로 내려왔다. 664년 부여융문무왕을 불러 형제의 맹약을 맺게 하면서 한반도 통제를 위해서 노력하였다. 670년경 소정방은 신라를 공격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계립령(문경시 부근)을 넘어 당교 인근에서 김유신에게 죽임을 당했다.[1] 그러나 중국 사서에서는 667년에 갑자기 죽었다고만 전한다. 그러나 소정방의 무덤은 중국에 없으며, 그의 죽음에 대해 석연찮은 기록 때문에 신라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2]

소정방이 당교에서 죽자, 고려시대의 문인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제소정방장군문"이라는 추모시를 지었다.

주석

  1. 삼국유사 기이편
  2. 역사스페셜 44회, 미스터리 추적 소정방 피살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