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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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차이나반도에 위치한 나라. 군부정권은 "미얀마"로, 민주화세력은 "버마"로 부른다.

개요

  • 정치체제: 군부독재, 연방제, 국가사회주의형 독재국가
  • 인구: 5050만명
  • 면적: 676,578 km
  • 기후: 온난다습한 아열대성 기후
  • 민족구성: 68%의 버마족, 샨족(9%), 카렌족(7%), 친족, 카친족, 몬족의 소수민족과 중국계, 인도계 주민들로 이루어져 있다.
  • 국가총생산: $937.7억 (59위) 2006년 기준
  • 1인당 국민소득: $1,691 (150위) 2006년 기준

역사

식민지 이전

영국 식민지 시대와 독립

기나긴 군부통치

버마는 1962년부터 줄곧 군사정권이 통치해 왔다. 천연가스, 목재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했지만, 지나친 고립·폐쇄 정책으로 경제난을 겪어왔다.

현 정권은 88년 민주화 시위를 유혈진압하며 성립된 정권이다. 당시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빈곤으로 누적된 불만은 ‘8888 항쟁’(1988년 8월8일 양곤에서 군부가 시위대에 발포한 사건), ‘랑군의 봄’ 등의 수식어를 동반하는 광범위한 민주화 시위로 이어졌다. 그러나 혼란 속에서 결과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것은 다시 한번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였다. 군부의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는 무력으로 정권을 접수하고, 89년엔 계엄령을 선포했다.

1990년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의회의 489석 가운데 392석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얻었지만, 군부가 선거를 무효화하고 당선자 상당수를 투옥했다. 군부는 의회가 구성돼 새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는 군부가 계속 집권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새 헌법 논의는 아직 시작도 못 했다. 1989년 계엄 당시 가택 연금된 아웅산 수치 여사는 지난 17년 가운데 11년 동안 집 밖으로 나서지 못했다.

현 군부 정권은 안팎의 비난 여론에 처해 있다. 군정을 이끌고 있는 1인자 탄 슈웨(73) 장군은 아웅산 수치 여사 및 그의 추종세력에 대한 강경 일변도의 탄압으로 악명이 높다. 2006년엔 딸의 호화 결혼식으로 낭비벽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인자인 마웅 아예는 90년대 초 군정에 참여하기 전까지 ‘골든 트라이앵글’의 마약거래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를 잇는 소에 윈 장군 역시 국내 민주화 세력에 대한 강경 진압으로 유명한 인사다.

미얀마 군부는 1962년 쿠데타를 일으키며 집권을 시작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우 네윈 전 대통령이 추구한 것은 ‘미얀마식 사회주의’였다. 군부 지도층은 혁명위원회를 조직하고, 주요 기업들을 모두 국유화시켰다. 사회주의 일당 독재체제 아래서 정당 활동도 통제됐다. 네윈 정권은 미얀마를 외부세계로부터 차단하고 고립화·공업화 정책을 실시했지만 실패했다. 60년대만 해도 필리핀과 더불어 아시아의 ‘경제강국’이었던 미얀마의 경제상황은 1987년에 이르러 ‘최빈국’ 수준까지 떨어졌다.

미얀마는 1997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에 가입해 일견 고립정책을 탈출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세안으로서도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묘안이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아세안에 미얀마 군정은 골칫거리다. 비민주적 인권 탄압이 서방과의 교역에서 발목을 잡았다. 최근 아세안-유럽연합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도 미얀마 군정의 ‘비인권적 상황’이 도마에 올랐다. 유럽연합 쪽에서 수치 여사의 불법 연금 상태를 문제 삼았던 것이다.